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에 일본 측이 제출한 ‘사도광산 보존 현황 보고서’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사도광산의 역사를 다루는 아이카와(相川) 향토박물관에 “‘한반도 출신 노동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삶’을 기리는 전시실을 신설했다(newly established)”고 밝히고 있다. 새 전시실에 광산 노동자의 출신지와 생활상 및 노동 환경을 소개하고, 기숙사 생활과 노동 쟁의 및 사고 기록, 담배 배급 명부 등을 전시했다는 주장이다.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이 착암(鑿巖) 등 위험한 갱도 내부 작업에 더 많이 종사했다는 내용을 담은 패널, 광산 노동자들이 썼던 도시락통 전시물 등의 사진도 소개했다.
그러나 이 전시실과 전시 내용은 2024년 7월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시점에 이미 모두 마련돼 있던 것들이다. 당시 세계유산위는 “유산의 전체 역사(the whole history)를 다루는 해설·전시 전략 및 시설을 개발하라”고 후속 조치를 권고한 바 있다. 한데 일본이 이번에 제출한 보고서를 뜯어 봐도 정말로 새로 조치한 건 별로 없다. 그저 원래 해놨던 것을 들이밀며 “권고를 따랐다”고 한다.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조선인이 ‘강제 동원’됐다는 서술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해당 전시에도, 이번 보고서에도 ‘강제 노동(forced labor)’이라는 표현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일본 측이 과거 썼고, 법적·행정적으로 동원했다는 뉘앙스가 있는 ‘징용공(conscripted workers)’이라는 표현도 없다. 그저 일관되게 ‘한반도 출신 노동자(Workers from the Korean Peninsula)’다. 보고서에 이 표현은 28회 이상 등장한다.그럼 대체 노동자들은 거기에 ‘왜’ 갔다는 것인가.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연구위원에 따르면 사도광산의 ‘연초배급명부’ 자료는 1945년 사라진 조선인에 대해 ‘결근’ ‘사직’ 등이 아니라 ‘도주’했다고 명시했다. 일제에 의해 동원돼 1944년 경성역에서 부산역으로 이동하던 이들 가운데 42%가 탈출했다는 홋카이도 탄광 회사의 자료도 있다. 모두 강제 동원됐음을 가리킨다. 일본 측은 당시 조선인이 자국민이었고, 전시 동원은 강제 노동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한일 강제병합 자체가 불법 무효다.
이번 세계유산위는 사도광산과 관련해 “전체 역사에 대한 설명과 전시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더욱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며 “관련 당사국 간의 지속적인 대화가 중요하고, 협의의 결과는 당사국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결정문을 채택할 전망이다. 이는 유산과 관련된 역사적 경험, 공동체와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돼선 안 된다는 ‘부산선언’의 ‘포용적(inclusive) 해석’ 조항과도 취지를 같이한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숨기는 유산은 진정한 세계유산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일본 정부는 들리지 않나.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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