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설]‘제우스 법’이 일깨운 친절과 연대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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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영화 ‘오디세이’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에는 낯선 문화가 등장한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는 정신을 담은 ‘크세니아(Xenia)’다. 집주인은 문을 두드린 이방인의 배경을 따지지 않고 음식과 잠자리를 내어주며, 손님은 주인의 영역을 존중하며 머물다 떠나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의 규범이다. 당대인들은 이를 어기면 신의 노여움을 산다고 여겨 ‘제우스의 법’이라고도 불렀다. 영화는 이 규범이 깨질 때 어떤 비극이 닥치는지 짚어낸다. 구혼자 무리가 궁전에 진을 치고 행패를 부려도 집주인은 크세니아의 족쇄에 묶여 이들을 내쫓지 못한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거인의 동굴에서 끔찍한 공격을 당한 것 역시 이 규범이 통할 거라는 오판 때문이었다. 이방인을 환대하는 문화는 고대 문명 전반에 존재했다. 성경의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다’, 인도의 ‘손님이 곧 신이다’, 중동 유목 사회의 ‘원수라도 3일은 보호해야 한다’ 등이다. 이런 규범이 선의와 친절만을 강조한 건 아니다. 도시국가를 벗어난 이방인은 어떤 보호도 기대하기 힘들었던 시대. 제우스의 권위에 기댄 크세니아는 모두를 지키는 ‘생존 안전장치’였던 셈이다. 이 규범은 오늘날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3000년 가까이 흘러 촘촘한 법과 제도를 갖췄음에도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그 시절보다 더 방어적이다. 낯선 이의 다급한 요청과 호의는 범죄의 미끼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경계부터 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적대시한다. 감정적 짐이 되는 관계는 가차 없이 잘라내는 ‘손절’도 유행한 지 오래다. 선의가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 사회에서 당연한 처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신은 정답이 아니다. 사회적 자본의 붕괴를 다룬 책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 따르면 관계의 단절은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훼손한다. 고립이 부른 혐오와 불안은 개인의 심신을 망가뜨리고, 범죄와 정치 갈등을 부추겨 공동체의 근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환대 문화의 복원은 개인의 호의와 사회적 신뢰가 맞물려야 가능하다. 일상에서 작은 소통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영국 서식스대 연구팀에 따르면 승강기에서 만난 이웃과 주고받는 눈인사나 타인의 작은 실수에 베푸는 관용이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낯선 이에게 받은 호의를 다시 제3자에게 베푸는 ‘선행 릴레이’ 효과도 확인됐다. 사람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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