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보니 세계 각국이 ‘핵 억제(Nuclear Deterrence)’ 경쟁에 나서고 있다. 핵 억제의 가장 강력한 형태가 ‘네가 핵으로 공격하면, 나도 핵으로 보복해 감당할 수 없는 파괴적인 타격을 입히겠다’는 상호확증파괴(MAD) 원칙이다. 핵무기의 공포를 역으로 이용해 상호 간 섣부른 공격을 막는 심리적이고 군사적인 장치다. 동의할 순 없지만, 북한이 무력 도발과 핵 보유를 정당화하며 내세우는 ‘자위적 전쟁 억제력’이 이런 논리다. 핵무기를 가진 국가들은 핵을 늘려서, 핵무기를 갖지 못한 국가들은 동맹국의 핵우산을 통한 확장억지로 핵 억제력을 확보한다.
냉전 이후 한동안은 핵을 줄이자는 외침이 통했지만, 이제는 ‘힘이 없으면 당한다’는 공포가 팽배해 있다. 핵보유국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수시로 전술핵 사용을 운운하며 노골적인 핵 협박에 나섰다. 북한과 중국은 기하급수적인 핵무력 증강에 나섰고 이란 또한 국제사회 눈을 피해 수백 kg의 고농축 우라늄을 은닉해 온 정황이 드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고 있다.
핵보유국마저 핵전력 현대화와 증강에 뛰어 들었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핵탄두 수(현재 290기 수준)를 더 늘리기로 결정했다”며 공개적으로 핵전력 강화 의지를 밝힌 게 대표적이다. 핵이 없는 국가들이 너도나도 손들어 핵을 원하는 눈치게임이 시작될 가능성도 제기된다.‘핵 없는 한반도’를 주장해 온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기세등등하게 미국에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공공연하게 핵무기 증강에 나선 상황에서 오랜 시간 북한 비핵화를 외교 목표의 최상단으로 삼아 온 한국의 전략적 공간은 좁아지고 있다. 한미 핵협의그룹(NCG) 등을 통한 확장억제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불안을 증폭시킨다.
핵 강화 경쟁의 파고 속에 우리 정부는 핵 억제 ‘그랜드플랜’을 그리고 있나. 비핵화 원칙을 수호하되, 현 NPT 체제가 허용하는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 확대나 핵추진 잠수함 등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넓히는 일이 급선무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재래식 전력의 확충도 숙제다.
정부 컨트롤타워가 당장의 방산 수출 실적을 홍보하는 데 집중할 게 아니라 미국의 확장억제와 맞물릴 재래식 전력을 정비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확산 원칙을 수호하면서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핵 개발 도미노 상황을 염두에 둔 금기 없는 대응 시나리오도 필요하다. 주변 눈치만 살피다 거저 얻는 안보는 없다.신나리 정치부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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