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핵융합 실현 가속화, 분명한 이정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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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충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성충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며칠 전 필자는 미국 보스턴 인근에 위치한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즈(CFS)를 방문했다. CFS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핵융합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로, 고온초전도체 기술을 활용한 차세대 실험 장치인 SPARC를 건설 중이다. 현장에서 만난 연구진은 머지않아 핵융합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열정은 큰 울림을 줬다. 동시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시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다.

세계가 핵융합 상용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속도를 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9월에도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보여주듯 기후위기는 일상으로 파고들었고, 빠르게 진화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전례 없는 전력 수요를 예고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수요 급증이라는 이중 과제 앞에서, 환경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새로운 에너지원이 절실하다. 최근 핵융합에너지가 이런 조건을 충족할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핵융합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이자, 사실상 고갈될 염려가 없는 수소 동위원소를 연료로 한다. 날씨나 지리적 조건에도 제약받지 않아 '이상적인 에너지원'으로 불린다. 기술적 난도가 워낙 높아 오랜 시간 '끝없는 도전'으로 여겨져 왔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지난 2022년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NIF)는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 실험에서 투입보다 많은 에너지를 얻는 '순에너지 생산'에 성공해, 핵융합 실현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더불어 현재 전 세계 50여개 민간 기업이 조기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핵융합이 더 이상 먼 미래 꿈이 아님을 보여준다.

주요 국가들은 이미 단계적 목표와 실행 계획을 제시하며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은 민관 협력 기반 국가 전략을 마련해 CFS와 같은 스타트업의 도전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CFEDR라는 실증로 건설을 추진하면서 그 전 단계로 연소 플라즈마 운전이 가능한 BEST 장치를 2027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영국은 2040년을 목표로 STEP 장치를 건설하는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공학기술 연구시설과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며 국가 차원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결코 뒤지지 않는 연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KSTAR 건설·운영으로 축적한 핵심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실험 성과 또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 운영 경험도 향후 핵융합 공학기술 개발 자산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해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 수립 이후 구체적인 로드맵과 실행 계획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과거에 KSTAR-ITER-DEMO로 이어지는 분명한 경로가 있었기에 KSTAR 건설과 운영에 전념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도 핵융합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세계 주요국들은 2030~2040년대 상용화를 목표로 앞다퉈 움직이고 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2030년대 실증을 목표로 혁신적인 핵융합 실증로 구축 계획을 조속히 마련하고, 필요한 핵심기술과 대형 연구 인프라도 전략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목표가 분명해야 연구와 투자가 방향을 잃지 않는다. 실행 계획이 구체화 될 때, 대학은 필요한 연구를 선도하며 적합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고, 젊은 연구자들은 미래를 위한 비전을 그릴 수 있다.

핵융합은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해결할 새로운 에너지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를 실현할 구체적 계획과 흔들림 없는 실행 의지다. 지금 우리가 선택하고 준비한다면, 한국은 미래 세대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성충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choongkisu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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