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은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화가였다. 여성은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도, 화가가 되는 것도 힘들던 시대를 살았지만 뛰어난 재능 덕에 젊은 나이에 화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가로 활약하며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귀족과 왕족의 후원을 받으며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작품이 종종 폄하되기도 했다. 1787년 32세의 르브룅은 프랑스 왕립아카데미가 주최하는 파리 살롱전에 그림 석 점을 출품했다. ‘거울 보는 쥘리’(1787년·사진)를 포함해 모두 딸 쥘리를 그린 초상화였다.
르브룅은 딸을 모델로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이 그림 역시 엄마로서 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담았다. 그림 속 쥘리는 일곱 살이다. 아이에서 소녀로 성장하는 단계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이 묘사돼 있다. 화가는 거울을 이용해 딸의 옆모습뿐 아니라 앞모습도 감상자들이 볼 수 있게 했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거울에 비친 다른 각도의 모습은 시각에 대한 알레고리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어떤 문제나 사건을 대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한 사람의 내면 안에도 서로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거울을 본다는 건 자신의 외면뿐 아니라 내면을 탐구하는 행위다. 어쩌면 화가는 거울에 비친 딸의 모습에 자신의 이상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성도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면서 말이다.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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