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양보에도 더 예리한 ‘핵비수’ 들이민 北[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2 weeks ago 7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된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서 ‘화성-20형’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공개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된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서 ‘화성-20형’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공개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북한의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은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핵·재래식 무기의 총집결장을 방불케 했다.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화성-20형’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대남 핵투발용 ‘화성-11마’ 극초음속 단거리탄도미사일은 물론이고 신형 전차와 자주포, 자폭드론 등이 대거 동원됐다.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을 최단 시간에 장악하겠다는 저의를 노골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대북 확성기와 대북 심리전 방송 등을 잇달아 중단하면서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의 일환이라고 했다. 8월 ‘을지자유의방패(UFS)’ 한미 연합 연습의 일부 실기동 훈련을 늦추고, 이달로 예정됐던 호국훈련을 다음 달로 연기한 것도 대북 유화 기조를 고려한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더 나아가 통일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을 위해 군사분계선(MDL) 등 접경지역의 사격·실기동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호응은 고사하고, 대한민국을 겨냥해 더 날카로운 ‘핵비수’를 들이미는 형국이다.

군 안팎에서는 북한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 화해 기조를 ‘한국 길들이기’로 악용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군 관계자는 “정부의 선제적 유화 조치를 어떤 평화라도 상관없다는 ‘평화 지상주의’로 북한이 오판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이 문재인 정부의 ‘유화정책’ 시즌2로 흘러갈 경우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과거 도발 사례가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화해의 손을 내민 진보정권이라고 해서 대남 도발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북한은 전략 전술적 득실을 따져 최고 지도자의 명령만 내려지면 갖은 수법을 동원한 기습 도발로 우리 장병의 목숨을 앗아갔다.

제1·2 연평해전이 햇볕정책을 ‘금과옥조’로 여겼던 김대중 정부에서 발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두 해전 모두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실화를 노린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이 발단이었다. 특히 북한은 진보정권 시절에는 우리 군의 대비 태세가 느슨해진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설마 도발하겠냐’는 방심을 틈타서 우리 군의 대비태세를 떠보다가 결정적 순간에 기습 도발을 강행하는 수법이었다. 북한의 유력한 도발 징후를 우발적 상황으로 간과했던 군은 뼈저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그간 진보 진영에서는 북한에 무력 도발의 책임을 따지기보다 ‘우발적 충돌’로 규정하고, ‘평화 지상주의’를 설파해온 것이 사실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이를 지켜본 북한은 도발을 통한 대남 길들이기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했을 게 자명하다”며 “이재명 정부에 대해서도 같은 수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미 전략자산의 전개나 한미 연합훈련을 트집 잡아서 핵 사용을 불사한 전쟁 위협을 극대화한 뒤 대남 유화카드를 전격적으로 들이미는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한국을 ‘패싱’하고 북-미 정상회담과 같은 통미봉남 전술로 한미동맹의 균열을 시도하다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대남·대미 도발 공세로 급변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모든 도발은 사전에 치밀히 계획되거나 우발을 가장한 기만 전술임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아울러 화해·평화 기조를 내건 진보정권은 대북 대비 태세를 소홀히 할 것이라는 통념과도 단절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기조가 이념과 민족에 매몰됐던 과거 진보정부와는 다르다는 점을 북한에 확실히 주지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안정을 추구하되 우리 국민과 영토, 장병의 안위를 위협하는 도발에는 단호한 대응 의지를 공표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우리의 거듭된 양보에도 북한이 열병식에서 각종 핵 타격 무기로 한국을 위협한 데 대해서도 준엄한 경고장을 날렸어야 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 이념과 색깔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누차 강조했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실용과 실리주의가 중요하다고도 했다. 국민을 보호하고, 국가를 보위하는 안보 문제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양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과거 대북정책의 교훈을 되새겨봐야 할 때다.

국방 이야기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금융팀의 뱅크워치

    금융팀의 뱅크워치

  • 유상건의 라커룸 안과 밖

    유상건의 라커룸 안과 밖

  • 정치를 부탁해

    정치를 부탁해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