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전기의 시대는 끝났다[기고/박형덕]

1 month ago 5

박형덕 법무법인 바른 상임고문·전 한국서부발전 사장

박형덕 법무법인 바른 상임고문·전 한국서부발전 사장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수 있다”며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했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정부의 물가 관리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요금 정상화의 필요성이 제기되더라도 선거나 물가 영향 등을 이유로 제대로 된 논의가 미뤄져 왔다. 이를 감안할 때 이 대통령의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 언급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의지와 용기를 보여준 발언이다.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동안 한국전력은 소비자 물가 상승에 따른 서민경제의 부담을 완화하고 반도체, 화학, 철강 등 국가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전력 다소비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오랜 기간 전기요금 인상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환경 변화로 연료비가 급등하면서 한전은 천문학적인 영업손실과 부채 증가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2022년부터는 산업용 전력을 대상으로 단계적 요금 인상을 하고 있다.

최근 3년 새 산업용 전기요금은 약 70% 인상됐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이는 곧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SK어드밴스드, LG화학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원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제도를 활용한 ‘탈(脫)한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해외로 생산기지 이전을 검토하는 ‘탈(脫)한국’ 방안도 자구책으로 검토 중이다. 이는 국내 일자리 감소와 내수 경기 둔화 등 연쇄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한국의 전기요금 체계는 사용자 간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크다. 가정용 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훨씬 낮고, 농업용 전기는 kWh(킬로와트시)당 30∼50원 수준에 불과하다. 전기를 많이 쓰는 일부 가구나 특정 용도의 사용자가 과도한 혜택을 누리는 구조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우선, 형평성에 맞게 전기요금의 현실화가 이뤄져야 한다. 일부 계층이나 업종에만 부담을 지우는 방식은 전력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흔들고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가정용 요금은 물론이고 원가 회수율이 25%에 불과한 농업용 전기요금 특례도 재검토해야 한다. ‘사용량 기반 부담’ 원칙을 명확히 하고, 농어민 부담 완화를 위해 가칭 ‘농수산업 장려기금’을 조성해 일정 기간 차액을 보전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둘째,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스마트 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늘어나면 낮에는 전기가 남고 밤에는 부족해지는 현상이 불가피하다. 이를 해결하려는 방안이 시간대별 요금제(Time-of-Use)다. 전력이 풍부한 시간대에 할인 요금을 적용해 전기차 충전, 가전제품 가동, 냉방 등 에너지 사용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셋째, 사회적 약자의 요금 인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도 병행돼야 한다. 소득 하위층이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기본요금 면제나 전력량 요금 할인 등을 적용하는 ‘사회적 전기요금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탄소세나 환경세를 활용한 에너지복지기금을 제도화해 이들의 에너지비용을 덜어줘야 한다. 정치적 부담이 큰 전기요금 정상화 문제를 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지금이야말로 논의를 본격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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