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우리의 생존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단연 '기후위기'입니다. 지난 200여년간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문명은 인류에게 전례 없는 번영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지구의 생태 한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정석희 전남대 환경에너지융합연구센터장(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은 “바다는 산성화되고 육지 생태계는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며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술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해답은 자연 그 자체에 있다”며 “기존의 기술이 자연을 정복하려 했다면, 이제는 자연에서 모방하고 배우는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설명했다. 연잎 표면 구조를 모방한 자가세정 나노 소재나 게코의 발바닥 구조를 이용한 로봇 기술 등 자연에서 배우는 혁신 사례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센터장은 대한민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분야로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MES)'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의 하·폐수에는 원자로 6기 분량의 에너지가 내재해 있지만, 처리 과정에서 오히려 원자로 1기 수준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MES를 활용하면 이 에너지를 회수할 수 있으며, 발생하는 슬러지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MES 기술은 수소 경제 전환과 탄소중립 시대의 핵심 기술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정 센터장은 서울시립대에 학부 특차 수석으로 입학, 총동창회장상을 수상 졸업 후, 국가 장학지원을 받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MES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스탠포드대가 발표한 '세계 상위 2% 연구자' 명단에 2023·2024년 2년 연속 이름을 올리는 등 환경공학 분야 국제적인 연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청색기술의 가치에 대해서는 “물리·화학적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저에너지 공정을 가능케 해 탄소 배출량을 사전에 억제할 수 있다”며 “자연 생태계의 순환 구조를 모방해 자원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기후변화 충격에 대한 지역사회의 대응 능력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 및 산업 구조 고도화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으며 대학 내 '청색기술 특화 연구소' 설립으로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의 시너지 효과 창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국내 대학의 연구소 지원 체계는 연구비와 행정 절차가 지나치게 분절돼 있어 융합 연구에 한계를 갖고 있다”며 “5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인 '청색기술개발 촉진법(가칭)'의 조속한 통과로 청색기술 관련 산학연 주체는 물론 기업·지자체·국책 연구기관까지 한데 모여 국가 전략으로서 청색기술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전환(A), 청색기술 중심 생태적 전환(B), 문화기술 기반 인본적 전환(C)의 ABC 혁신국가 전략에서 'B' 축으로서 청색기술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디지털 혁신과 문화산업이 자연과 공존할 때 지속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청색기술 관련 연구소 설립·운영, 산학연 협력 모델, 실증·사업화 지원 등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이라고 당부했다.
광주=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