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AI연구원이 미국 잭슨랩과 손잡고 알츠하이머병 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공동 연구를 시작한 지 1년4개월 만에 알츠하이머병의 진단 정확도를 92%로 끌어올렸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미국 빅테크들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바이오 시장을 선점하려는 상황에서 한국도 경쟁에 뛰어들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잭슨랩은 유전질환 연구에서 세계적 권위를 지닌 기관으로 직간접적으로 노벨상 수상자 26명을 배출했다.
◇생성형 AI를 난치병 진단에 활용
11일 AI업계에 따르면 LG AI연구원은 잭슨랩과 공동으로 알츠하이머병을 연구한 성과 6편을 지난달 캐나다에서 열린 알츠하이머협회 국제학술대회(AAIC)와 국제머신러닝학회(ICML)에서 나눠 발표했다.
연구진은 자체 AI 플랫폼을 활용해 알츠하이머병 진단 능력을 크게 향상했다.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전략을 활용했다. 기존에도 유전체 분석 등 정밀의료를 기반으로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복잡한 생물학적 과정을 포함한 신경퇴행성 질환을 진단하는 AI 모델을 개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진은 환자의 뇌 세포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단일세포 유전체 분석(snRNA-seq)’ 기술을 활용해 질병에 원인이 되는 세포를 구분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AI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마치 현미경처럼 단일세포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 진행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핵심 세포를 찾아낸다는 것이 특징이다.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방대한 의료 빅데이터를 조망하는 일명 ‘망원경 분석’을 활용해 기존 의료 데이터 활용의 고질적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의료 분야에서 AI를 활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지만 환자마다 측정된 데이터 종류가 다르거나 일부가 누락되는 데이터 불완전성이 발목을 잡아왔다.
LG AI연구원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불완전 데이터 통합 분석 플랫폼 ‘모이라(MOIRA)’를 개발했다. 이 모델은 가용한 데이터를 조합한 뒤 누락된 항목은 다른 형태의 데이터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정교하게 보완한다. 모이라의 알츠하이머병 진단 정확도는 92%에 달했다. 임상의가 진단할 때의 정확도는 60~70%다.
◇LG의 ‘AI 바이오’ 첫 결실
최근 바이오산업은 빅테크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멀티모달 AI를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의료 데이터를 결합하고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환자의 개별 생체 정보를 바탕으로 한 맞춤형 진단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MS가 지난 7월 공개한 AI 기반 진단 플랫폼 ‘마이크로소프트 AI 진단 오케스트라(MAI-DxO)’는 의사의 진단률(20%)보다 네 배 이상 높은 정확도(85%)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글은 지난해 의학용 생성 AI인 ‘메드 제미나이’를 공개했다.
LG는 국내 기업 중 선구적으로 AI에 바이오산업을 접목하고 있다. 7월 초 선보인 ‘엑사원 패스 2.0’가 대표적이다. 기존 2주 이상 걸리는 유전자검사 소요 시간을 1분 이내로 단축할 수 있는 정밀의료 AI 모델이다. 백민경 서울대 교수팀, 황태현 미국 밴더빌트대 메디컬센터 교수팀과 공동으로 의료 AI 플랫폼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김기영 LG AI연구원 바이오랩 연구원은 “알츠하이머병 연구에서 발굴한 신약 개발 표적 후보군들은 내년 실험을 통해 검증한 뒤 향후 치료제 개발로 확장할 것”이라며 “잭슨랩과의 장기적인 협력을 통해 바이오 AI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LG는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통해 스트랜드테라퓨틱스, 아드박테라퓨틱스 등에 투자하는 등 바이오 분야 투자도 늘리고 있다. 누적 투자금은 5000만달러를 웃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혁신 신약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다 오래 함께할 수 있는 미래에 도전한다”며 고객의 삶을 변화시켜주는 기술로 AI와 바이오를 꼽기도 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