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에이아이에는 카피캣이 없습니다. 남들이 한다고 무턱대고 따라하지 않습니다. 우리 만의 독자 기술력으로 일선 의료현장의 요구를 충족시켜 세계 최고 의료 인공지능(AI) 기업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김용식 퍼즐에이아이 대표는 최근 인터뷰를 갖고 음성인식 전자의무기록 솔루션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갖게 된 비결을 이같이 밝혔다. 의료진이 말만 하면 진료 의무기록을 자동으로 작성해주는 이 회사의 '보이스 EMR'은 국내 170여개 병원에서 이미 채택했다. 압도적 국내 1위다. 설립 7년차인 이 회사는 올해 미국 진출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도 본격 나선다.
소명의식이 일깨운 창업 아이디어
가톨릭의대 정형외과학교실 교수를 지낸 김 대표는 엉덩이관절 질환의 세계적 권위자다. 2003년 세계 최초로 고안해낸 인공고관절 수술법은 미국 유럽 일본 의사들이 배워갔을 만큼 주목을 받았다. 수입에 의존하던 인공관절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도 그였다.
이런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2007년에는 전체 회원이 60여명뿐인 국제고관절학회 회원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에는 인공관절 표면을 뼈와 비슷한 구조로 처리하는 기술을 개발해 미국고관절학회에서 아시아 처음으로 최고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술법이 만족스럽지 않아 새로운 방식을 찾고 연구한 결과"라고 했다. 퍼즐에이아이에 카피캣이 없는 것은 그의 평소 연구 철학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김 대표가 전자의무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울성모병원 병원장이던 2018년이었다. 미국에서 열린 보건의료박람회를 견학하면서 AI 기반 음성인식 전자의무기록 시대가 오고 있다는 걸 목격했다.
"환자치료, 수술 등 진료 업무 외에 의무기록까지 작성하느라 의료진이 번아웃 되기 일쑤인 우리 현실이 떠오르더군요. 음성인식 EMR 솔루션을 제대로 만들면 의료진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카이스트 AI 인재들을 만나다
김 대표는 귀국하자마자 AI 개발자를 찾았다. 하지만 개발자 찾기가 여의치 않았다. 당시는 국내에 AI 개발자가 흔치 않을 때였다. 수소문 끝에 10년 넘게 교류해오던 카이스트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AI는 18~25세 사이의 총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하는 분야라면서 학교 동아리 학생들을 소개해주더군요."
김 대표는 카이스트 동아리 학생 9명과 함께 2018년 창업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퍼즐(puzzle)로 보고 AI로 이를 해결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뜻에서 회사 이름을 퍼즐에이아이로 정했다.
막상 '보이스 EMR' 개발은 녹록치 않았다. 주변 소음이 많은 일선 의료현장 특성 때문이었다. 대형 병원 등에서는 의료진, 환자, 보호자들 간의 대화가 여기저기서 오가는가 하면, 수시로 안내방송이 나오기 일쑤다. 이런 환경에서 특정 의사나 간호사의 말만 가려서 인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소음이 차단된 환경에서의 음성인식 기술과는 난이도의 차원이 달랐다.
맥도날드가 IBM의 음성인식 기술로 드라이브 스루 주문시스템을 구축했다가 실패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주변 소음이나 음성 간섭이 많은 일상 환경에서의 음성 인식은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업조차 실패할 만큼 허들이 높다. 김 대표는 "사진이나 영상을 인식하는 것과 음성을 인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게임"이라며 "가혹한 환경에서도 인식 오류가 거의 없는 음성 인식 기술을 확보한 곳은 세계적으로도 아직 찾기 어렵다"고 했다.
"음성 인식 기술력 '세계 최고' 자부"
허들을 넘기 위해 퍼즐에이아이가 고안해낸 것이 전용 마이크였다. 주변 사람들의 말은 걸러내고, 특정 사람의 말만 인식하는 마이크를 개발해냈다. 꼬박 3년이 걸렸다. 목걸이처럼 걸고 있으면 그 사람의 말만 인식한다. 사람의 음폭 등을 정밀하게 계산해 반영한 결과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내 임상 현장에선 의료진이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는 게 일상적이다. 그리고 EMR에는 영어는 영어로, 한국어는 한국어로 각각 인식해서 표기해야 한다.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면 영어를 한글로 치환해서 인식하는 구글, 애플 등의 음성인식 방식과는 달라야 했다.
게다가 콩글리시 발음도 인식해야 했다. 발 뒤꿈치 뼈를 의미하는 영어 'Calcaneus'의 경우 미국식 발음은 '캘커너스' 또는 '켈케이너스'인데, 국내 의료진은 '칼카네우스' 또는 '칼카니우스' 등으로 발음한다. 의료용어 상당수가 별반 다르지 않다.
퍼즐에이아이는 수만시간 분량의 의료진 음성 데이터를 쌓았다. 의사 개개인의 발음 특성 등을 반영해 끊임없이 튜닝 작업도 거쳤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음성 인식률을 갖춘 '보이스 EMR'을 개발해냈다.
음성 인식률이 통상 95% 정도면 높은 축에 속한다. 문제는 이 단계부터 인식률을 1%포인트 올리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데이터를 어떻게 잘 반영할 것인지, 또 튜닝할 것인지 끊임없이 연구한다"며 "재단사가 통상 2,3차례 하는 가봉을 100번을 하면 훨씬 입기 편한 옷을 만들 수 있는 원리와 같다"고 했다.
퍼즐에이아이는 완전한 핸즈프리 서비스가 목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료진이 음성만으로 진료기록을 완성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PC나 휴대폰 등으로 의료진이 추가적인 수작업을 할 필요가 없도록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간호사들이 진료 기록을 하려고 방호복을 하루 20~30차례 벗고 입고를 반복했다"면서 "앞으로는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서 진료기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빅 5' 등 170여개 병의원서 도입
퍼즐에이아이의 주력 제품인 '보이스 EMR'과 '보이스 ENR'(Electronic Nursing Record)은 의료 현장의 풍경도 바꿔놓을 전망이다. 진료 차트 기록 업무에서 벗어난 의사는 PC 모니터 보다는 환자를 마주보면서 진료를 하게 되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의사나 간호사가 의료 관련 정보에 대해 말하면, AI가 이를 차트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데스크톱에서 마이크를 통해 사용할 수도 있고,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이 모바일을 통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보이스 ENR'은 간호사들이 별도의 기록 작업 없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간호업무 수행 즉시 음성으로 모든 내용을 ENR에 실시간으로 입력, 저장할 수 있는 서비스다.
퍼즐에이아이의 '보이스 EMR'는 국내 주요 병원에서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빅 5'를 포함한 국내 대표 병원들에서 이미 쓰이고 있다. '보이스 ENR'은 5개 대학병원과 1개 종합병원 등에 도입됐으며 현재 테스트를 준비 중인 병원만 10여곳에 이른다.
퍼즐에이아이는 '구독료' 방식의 서비스 정책을 펴고 있다. 이용자별로 일정액의 월 사용료를 받는 방식이다. 병원들이 디지털화를 위해 턴키 방식으로 도입하는 소프트웨어의 이용률이 낮은 현실을 감안한 조치다. 김 대표는 "의료진 개개인의 특성을 반영해서 맞춤식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퍼즐에이아이의 '보이스 EMR' 가입 개인구좌 수는 매년 두배로 늘고 있다.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분야 의사들이 주요 고객이다. 김 대표는 "종합병원의 영상의학과, 병리과, 핵의학과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소화기내과, 수술실, 외래 등에서도 도입 움직임이 활발하다"며 "내년까지 개인 가입 구좌 수를 1000개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美 뉴앙스 뛰어넘겠다"
퍼즐에이아이가 꼽는 경쟁자는 미국 헬스케어 서비스기업 뉴앙스커뮤니케이션이다. 클라우드 기반 AI 헬스케어 문서화 솔루션인 '드래곤 메디컬 원(DMO)', 대화형 AI 플랫폼인 '드래곤 앰비언트 익스피리언스(DAX)' 등이 주력 제품이다. 진료 내용을 병원의 전자건강기록 시스템에 자동으로 기록해준다.
뉴앙스는 음성 인식 전자의료기록 시장의 글로벌 선두주자다. 2021년 마이크로소프트에 160억 달러 규모로 인수된 뉴앙스는 2020년 DAX 플랫폼을 출시했다. 전 세계 50만명 이상의 의사와 1만5000여개 의료기관이 사용 중이다.
국내에서는 일부 대학병원이 뉴앙스 제품을 도입한 적이 있으나 한영 음성인식 문제로 널리 활용되지는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의료 환경의 특수성 때문에 음성 인식 전자의료기록 시장이 커지 못했다"고 말했다.
EMR 다음 먹거리는 생성형 AI 질병 진단
퍼즐에이아이는 '음성 인공지능 동의서' 시장 진출도 계획 중이다. 임상현장에서 환자들과 시술 및 수술 동의서 작성 작업이 수없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의료진이 환자 또는 보호자에게 하는 음성 설명을 문서화하는 서비스다. 김 대표는 "의료분쟁 등에 필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어 병원이나 환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퍼즐에이아이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질환 진단 솔루션 기술도 개발 중이다. 지난해 11월 공개한 생성형 AI 녹내장 진단솔루션이 대표적이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황웅주 교수팀과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과 버티컬 데이터를 이용해 안저 검사 소견과 시신경단층 촬영 이미지로부터 시야 검사 결과를 생성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녹내장은 선진국에서 가장 흔한 실명 원인 중 하나다. 녹내장 진단에는 시야 검사가 필수적인 검사다. 문제는 검사시간이 길고 피로도가 높으며 검사비용도 비싸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안과의 기본 검사인 안저 검사가 시야 검사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현재 보유한 생성형 AI 기술을 토대로 다양한 질환 진단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올해가 해외 진출 원년…기업공개도 추진
퍼즐에이아이는 해외 진출에도 본격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미국 델라웨어에 현지법인을 세웠다. 뉴앙스 등 미국 기업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싱가포르 등 동남아 시장과 중동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동남아, 중동 등에서 쓰는 특유의 영어 발음에 대한 인식률도 높이고 있다"고 했다.
퍼즐에이아이의 직원은 모두 66명이다. 이중 절반인 33명이 개발자다. 올해 말 또는 내년에 기업공개(IPO)에 나설 계획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추가 외부 투자 유치도 검토 중이다. 현재까지 벤처캐피털 등으로부터 투자받은 금액은 총 200억원이다.
김 대표는 "기술은 물론 고객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퍼즐에이아이가 어떤 글로벌 기업보다 앞서 있다고 자부한다"며 "사람을 대체하는 일 보다는 기계를 대체하고 사람을 보조하는 일을 하는 AI 기업이 되는 게 회사의 사명"이라고 했다.
박영태 바이오 전문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