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F 스타트업 이야기] 〈72〉선택된 지위와 주어진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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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

“책임이 다른 만큼, 구조도 달라야 한다.”

우리는 흔히 좋은 사람을 믿고 시작한다. 그리고 좋은 경계는 '좋은 사람이면 자연히 생길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좋은 마음이 좋은 구조를 보장한다는 것은 욕심이지 않을까? 사람의 선함이 좋은 구조를 보장하지 않고, 책임의 차이를 설계로 반영하지 않으면 신뢰는 선의에 기대다 무너지게 된다.

좋은 마음은 출발선일 뿐, 지속을 보장하지 않는다. 구조가 없으면 선의는 피로로 바뀌고, 경계가 없으면 신뢰는 소모된다. 그래서 먼저, 우리가 서 있는 지위를 상황에 맞게 구성하고 구분해야 한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성취지위(achieved status)가 선택된 지위이고, 귀속지위(ascribed status)가 주어진 지위이다. 우리는 보통 이러한 지위를 동시에 갖는다. 예를 들어, “나는 남편으로 살기로 선택했다”는 말은 분명 성취·선택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아이에게 부모는 전형적인 귀속·주어진 지위다. 그러므로 같은 가정 안에서도 책임의 설계는 달라야 한다. 선택할 수 있었던 쪽은 더 두꺼운 설명 책임과 더 투명한 경계 설정을 먼저 져야 한다. 반대로 선택권이 없었던 쪽(아이, 보호받아야 할 구성원)에게는 더 강한 안전장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나이 값을 해야 한다?

가정을 벗어나면 다수의 지위는 선택 지위처럼 보인다. 다만 우리가 사회에서 거의 회피할 수 없는 귀속 지위가 하나 있다. 바로 나이와 그에 결박된 호칭이다. 한국 사회는 나이·호칭에 민감하다. 문제는 나이가 권한과 책임의 합리적 분배를 자동으로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가 위계의 기준이 되면 세 가지 불일치가 발생한다.

첫 번째. 권한과 전문성의 불일치이다. 나이는 많지만 해당 업무 전문성은 낮은 경우, 의사결정이 경험담 중심으로 왜곡되는 것이다. 둘째. 책임과 발언권 불일치. 실무 책임을 지는 사람의 발언권이 낮아져 오류가 반복된다. 셋째. 정보와 지위 불일치. 현장 정보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곳 또는 협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퍼지지 못해 조직 학습을 멈추게 한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귀속 지위는 예우의 언어로, 선택 지위는 설계의 언어로 다뤄야 한다. 즉, 나이에 대한 존칭·예의는 유지하되, 권한·책임·정보 접근은 역할과 성과에 따라 배분하는 원칙을 공식화하자. 말은 존중을, 제도는 책임을 담아야 한다.

결국 신뢰는 좋은 마음의 산물이 아니라 좋은 설계의 결과다. 귀속 지위는 예우로 다듬고, 선택 지위는 제도로 고정하자. 권한·책임·정보를 역할과 성과에 맞춰 재배치하는 기준을 분명히 하고, 분기마다 점검해 업데이트한다. 선의가 피로로 바뀌지 않도록 약속의 방식을 설계로 옮기는 습관을 팀의 기본기로 만들자. 그 순간 신뢰는 소모품이 아니라 자산이 된다.

이렇게 쌓인 신뢰의 자산은 공동체의 지속성을 높여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체력을 만들고, 합의된 설계를 통해 방향 유지를 가능하게 하며, 역할과 결과가 투명하게 연결된 절차 속에서 각 구성원들의 존중을 일상의 규범으로 정착시킨다. 결국 구조가 신뢰를 지키고, 신뢰가 구조를 견고하게 하며, 상호 강화의 고리가 우리 공동체를 다음 단계로 이끈다.

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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