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지속가능 사회를 여는 기후테크 성장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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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전하진 SDX재단 이사장

영국 스타트업 옥토퍼스 에너지는 인공지능(AI) 플랫폼 크라켄(Kraken)으로 에너지 자원을 지능적으로 연결하며 창업 10년 만에 18개국 5000만 가입자, 기업가치 12조원을 달성했다. 반면 독일은 탈원전 이후 재생에너지 전환에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도 성과는 더뎠다. 기술 수준의 차이가 아니었다. 기술이 작동하는 생태계 구조의 차이였다.

오늘날 기후테크 육성이 지지부진한 이유도 같다. 개별 기술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실증 사업을 나열하는 방식으로는 산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술이 적용되고, 성과가 측정되며, 투자가 유입되어 수요가 확대되는 선순환 구조가 먼저 설계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에너지뿐 아니라 식량, 물, 주거, 공급망 등 도시 운영 전반을 흔드는 복합적 도전이다. 반도체가 디지털 문명의 핵심 기반이었다면, 이제 기후테크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이자 국가 차원의 미래 성장 축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기후테크의 범주도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생산·저장·효율화, 탄소 포집, 순환경제 등 분야별 분류를 넘어, 과잉 생산과 불필요한 이동, 자원 낭비를 지능적으로 억제하며 시스템 전체의 엔트로피를 낮추는 기술까지 포괄해야 한다. 지역 기반의 자원 순환과 AI 최적화 기술 역시 기후테크의 핵심 영역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범주가 확장되어야 시장도 커지고, 더 많은 기업이 진입할 이유가 생긴다.

[ET시론]지속가능 사회를 여는 기후테크 성장 전략

◇기후테크가 집적되는 기본 단위 '살림셀'을 잇는 '분산지능망'

컨테이너 표준 규격이 세계 물류 혁명을 만들었고, PC라는 작은 컴퓨터가 디지털 세상을 열었듯, 기후테크에도 혁신이 집적되고 실증되는 기본 단위가 필요하다. 그것이 살림셀(SalimCell)이다.

살림셀이 고립된 섬에 머물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살림셀 간 연결이 확장될 때 기후테크 산업은 비로소 도약한다. 그 연결 구조가 분산지능망(OSCAN:Orchestrated Salim Cell Agentic Network)이다.

OSCAN은 AI 에이전트가 살림셀 간 잉여자원을 실시간으로 조율·거래·배분하는 네트워크다. 전기, 열, 물, 저장 용량, 농산물, 서비스까지 각 셀의 잉여와 부족을 자율적으로 교환한다. 기존 중앙집중형 공급망이 대규모 통합 전력망의 효율성에 의존한다면, OSCAN은 개별 살림셀 간 직접 연결과 거래를 통해 네트워크 전체의 안정성을 꾀하는 진정한 분산형 지능망이다. 네덜란드 Vandebron, 영국 Piclo 같은 개인간(P2P) 에너지 플랫폼이 이 방향성을 일부 실증하고 있지만, OSCAN은 에너지를 넘어 모든 자원의 분산 지능 거래를 지향한다.

◇조각탄소시장 MCM: 성과를 시장 가치로 전환하는 메커니즘

기후테크가 전략산업이 되려면 성과가 측정되고 시장에서 거래되어야 한다. 많은 기후 기술이 '좋은 일'로는 인정받았지만 '수익 나는 기술'로는 인정받지 못한 것은 측정 체계와 시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각탄소시장(MCM:Mini Carbon Market)이 이 공백을 메운다.

살림셀 단위의 감축량을 사물인터넷(IoT) 센서로 실시간 수집하고, 국제 방법론에 준하는 제3자 검증을 거쳐 조각탄소크레딧(MCC)으로 발행한다. 블록체인 기반 이중계산 방지로 기존 탄소시장의 신뢰 문제를 구조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여기에 개인의 일상적 기후행동을 기후행동크레딧(MCA)으로 전환하면, 예를 들어 경기도 기후행동기회소득에 참여하는 190만명의 파편화된 데이터를 하나의 표준 시장으로 통합할 수 있다.

MCM이 구축되면 기후테크 기업은 제품 판매에 더해 감축 성과 자체를 자산화할 수 있다. 기업이 기후테크를 도입하는 이유가 '사회적 책임'에서 '수익 창출'로 바뀌는 순간, 시장의 작동 원리가 달라진다. 인터넷 표준을 누가 만들었느냐가 디지털 패권을 결정했듯, MCM 표준의 선점이 기후행동 경제의 주도권을 결정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수백만 명의 기후행동 데이터베이스, MCA 방법론, 크레딧 발행 플랫폼, 해외 살림셀 실증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개념이 아니라 준비된 자산이다.

◇네 가지 정책 제언

이 생태계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과감한 정책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첫째, 기후테크를 미래 인프라 사업으로 격상해야 한다. 살림셀 실증단지와 분산지능망 구축을 국가 전략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둘째, MCC·MCA 같은 정량 성과지표를 제도화해야 한다. 감축 성과를 별도로 평가·보상하는 구조가 생겨야 기업이 기후테크를 비용이 아닌 수익 구조로 인식한다. 셋째, 살림셀 법인과 기후테크 기업에 금융·세제·규제 특례를 패키지로 지원해야 한다. 개별 기술 보조금만으로는 산업 생태계 전체를 키울 수 없다. 기술·삶터·네트워크·시장·금융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넷째, 자본시장과 연결해야 한다. 살림셀의 에너지 자급률과 MCC 창출량을 투자 지표로 표준화하면 장기적으로 살림셀 거래소와 같은 새로운 자산 시장도 구상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기후테크는 보조금 산업이 아니라 투자와 혁신이 몰리는 성장 산업이 된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 hajin@hajin.com

〈필자〉벤처 1세대 기업가 출신으로, 디지털 전환(DX)과 기후 대응을 결합한 '기후테크 생태계' 구축을 주도하고 있는 정책·산업 전문가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를 맡아 회사를 회생시키며 '벤처 신화'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이후 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ICT·신산업 분야에서 활동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해 에너지·ICT 분야 입법을 주도했으며, 수요자원거래시장(DR)을 도입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일명 '전하진법')을 통해 전력시장 구조 변화에 기여했다. 현재는 SDX재단 이사장으로서 민간 주도의 탄소감축, 자발적 탄소시장, 기후테크 산업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 기반의 분산형 에너지·자원 시스템과 기후테크 산업화를 연결하는 정책 비전을 제시하며, 기후위기를 '산업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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