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일상은 과학기술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스마트폰, 인공지능(AI), 알고리즘, 그리고 저궤도 위성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은 이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사회 변화의 근본적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더불어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이러한 기술의 영향력이 이제 국가 정상들이 직접 논의하는 외교적 주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덕담이나 아이스브레이킹의 수준을 넘어, AI와 양자컴퓨팅은 실질적 글로벌 전략 대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요즘 AI 따라가기 참 어렵습니다”라는 말이 회의장 분위기를 여는 대화가 될 정도라면, 과학기술이 외교의 언어가 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이제는 이 흐름을 일시적 트렌드로 볼 수 없다. 과학기술은 국제 질서를 구성하는 새로운 축이 됐고, '과학외교'는 그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을 '과학 정상 외교'라 칭하든 다른 용어로 부르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기존 정책의 칸막이를 넘어 통합적 사고와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첫째, 우리는 글로벌 과학기술 생태계에서 지속적인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도적 연구개발과 국제 과학 커뮤니티에서의 적극적인 참여와 기여가 병행돼야 한다. 우리의 존재감은 기술력이 아니라 참여와 협력의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둘째, 과학외교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안정적이고 개방적 과학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정부의 연구 지원, 과학기술 인재 유치, 국제 네트워크가 촘촘히 연결돼야 한다. 과학기술자는 이제 연구자이자 설명자, 협상자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 글로벌 의제의 상당수가 과학기술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들의 전문성은 국가의 전략적 자산이다.
셋째, 우리의 과학외교가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은 과학외교를 안보전략의 일부로, 유럽연합은 경계를 넘는 협력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둘 것인가? 기술 주권, 호혜성, 공공선 등 우리 고유의 입장을 국제무대에서 제시할 때가 됐다.
넷째, 정책이 실행되기 위한 실행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과학이 국제협력 및 과학외교 정책을 견인한다'는 관점과 '국제협력과 과학외교가 과학의 생태계를 추동한다'는 두 가지 관점에서 통합돼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는 과학기술 자체와 과학 및 외교 정책에 관한 전문성이 모두 필요할 것이다. 과학기술 자문관제, 유관 부처간 상시 협력 채널, 대통령실과 부처 및 국책기관간 전략 조정 체계 등 마련이 필수다. 과학외교는 선언적 구호에 그치게 하지 않으려면 그만큼 실질적 전략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과학외교는 정보나 논리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를 설계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기술이자, 협력의 언어다. 과학기술이 외교의 언어가 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그 언어를 더 유창하게 말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 함께 해보시죠.” 이 한마디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국가는 글로벌 무대에서 악수를 청해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무엇보다 과학기술자들은 이 말 한마디에 실질적인 내용과 신뢰를 더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겠다. 이것이 뒷받침될 때, 과학외교는 정상외교의 실질적 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 무대에서 누구도 빠져서는 안되며, 과학기술자가 빠질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