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점효과라고 불리며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장이 있다.
선점된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이 특허로 보호를 받거나, 기술적 표준의 주도성을 가진 경우 충분한 자본과 기술을 가진 후발주자라고 하더라도 따라잡기 힘든 시장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플랫폼 성격의 제품, 서비스 시장이 퍼스트무버가 강력한 경쟁우위를 가지게 되는 곳이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운용체계(OS)가 전형적인 플랫폼 제품이다. OS라는 플랫폼 위에는 그 위에서 소프트웨어(SW)를 제공하는 공급자와 그 SW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데, 그 생태계가 크면 클수록 이해관계의 복잡성으로 인해 후발주자가 시장을 잠식하기가 어렵다.
과거 국가 주도의 OS개발이 어려웠던 이유도 기술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런 생태계의 특징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선점효과가 강한 플랫폼 서비스로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가 있다. 신규 메신저가 등장해 카카오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참여자들이 한번에 서비스를 이동해야 하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플랫폼의 특징을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른다. 내가 경쟁해야 하는 산업이 선점효과가 큰 곳이라면 후발주자로써 할 수 있는 경쟁의 방식이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후발주자는 자신이 처한 시장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첫 걸음이다.
우리는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 그 안의 거대언어모델(LLM) 시장에서 후발주자 위치에 있다. LLM의 선발주자인 챗GPT는 엄청난 기술적 격차로 등장해 시장에 위압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격차를 굳히기 위해 시장 초반에 야심찬 플랫폼 전략을 전개했다. GPT 플러그인과 GPT 스토어가 바로 그것인데 만약 플러그인 서비스가 제대로 동작해 수많은 플러그인 공급자와 소비자가 생겼다면 후발 LLM은 LLM 순수 기능만으로 챗GPT와 겨룰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플러그인은 기술적 한계로 개발이 중단했고 스토어도 아직 영향력이 미미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로드나 제미나이 등이 나타나며 상호 기술혁신에만 몰두 하다 보니 LLM 시장은 '다행히'도 플랫폼으로 진화가 더디다.
또 LLM은 자연어로 된 대화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능이 비슷한 다른 LLM으로의 전환이 쉽다.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LLM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랭체인이나 랭그래프와 같은 도구를 통해 손쉽게 멀티 LLM을 활용할 수 있다. 한마디로 LLM 시장에서는 서비스간의 이동이 매우 쉬워(switchable) 선점효과가 약하다.
또 LLM 시장은 그간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인프라 경쟁이었다. 세계 10위 경제 수준을 갖춘 우리나라조차도 미국 주도의 자본싸움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불과 50일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딥시크(DeepSeek) 임팩트로 시장의 성격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딥시크는 낮은 비용과 열위의 인프라에서도 동등한 수준의 기술 구현이 가능함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를 포함한 후발주자들에게 새로운 경쟁방식의 가능성을 열었고, 특히 오픈소스라는 퍼블리싱 형태를 통해 폐쇄적 LLM 사업자들을 긴장시켰다. 오픈소스의 파급력이 얼마나 컸던가는 이후 오픈AI가 일부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발표한 위기감으로도 알 수 있다.
이처럼 LLM이 오픈소스화 되어 발전한다면 LLM은 몇몇 업체의 독점적 기술이 아닌, 전기나 인터넷처럼 범용 기술이 될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해 LLM 시장은 후발주자에게도 점점 유리한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해볼 만하다'는 업계의 얘기가 허황된 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AI 3대 강국이 될 수 있는 기회의 변곡점이 지금일지도 모른다.
정상원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초거대AI추진협의회 부회장·이스트소프트 대표 bizway@est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