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인공지능(AI) 안전성과 신뢰성보다는 AI 경쟁력 강화와 산업 발전에 더 무게를 두는 모양새다.
2023년 영국과 지난해 서울에서 열렸던 AI 정상회의까지 강조해왔던 AI 안전성 논의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분석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폐막한 제3차 AI 행동 정상회의는 AI에 대한 이 같은 국제 정세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주최국인 프랑스와 인도를 비롯해 독일, 한국 등 58개국과 유럽연합(EU), 아프리카 연합 집행위원회 등은 이날 회의 폐막 후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AI에 관한 선언문'을 채택했다.
그러나 AI 기술을 주도하는 미국과 영국은 서명하지 않았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과도한 규제 대신에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국제 규약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자국 AI 산업 발전을 위해 1090억유로(약 163조원) 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EU도 총 2000억유로(약 300조 원) 규모 유럽 내 AI 인프라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자금 규모만으로는 세계 최대 투자다.
AI 패권 경쟁이 가열되면서 과거 '핵'을 두고 벌어졌던 냉전시대를 방불케 한다는 평가다. AI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술로 발전하면서 각국은 국가적 자본, 인재, 기술을 AI로 결집하는 상황이다.
주요국은 AI 분야에서 과도한 규제 대신 기술 발전을 지원, 경쟁국을 견제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기술 혁신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미국과 EU에서 이러한 긴장감이 더욱 고조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이 AI 경쟁에 뒤처져 있다며 규제 단순화와 함께 속도전을 주문했다. 독일과 함께 EU의 주축인 프랑스가 규제 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독일은 제조업에 AI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관련 규제가 산업 경쟁력에 부담이 줄 수 있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 최초 'AI 법(AI 액트)'을 통과시키는 등 규제 논의에 앞장서던 EU가 방향을 틀었다는 진단이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3국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AI 기술 혁신 촉진을 위해 느슨한 AI 규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AI에 대한 EU 차원의 엄격한 규제가 아닌 국가별 산업별 관리에 초점을 맞추자는 제안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각국이 AI를 마치 핵 보유처럼 국가의 승패를 좌우할 문제로 판단하고 있다”며 “AI가 국가와 대통령 차원의 주요 아젠다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규제 정책으로 인해) 자칫하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명희 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