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남 양산 에이원CC(파71) 3번홀(파5). 옥태훈은 핀까지 72야드를 남겨두고 세 번째 샷을 치자마자 그립에서 오른손을 풀었다. “조금 당겨쳤다”는 느낌 탓이었다. 그런데 핀 왼쪽 상단에 떨어진 공에 백스핀이 걸려 홀로 빨려 들어갔다. 그린 주변 갤러리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오고서야 이글이 됐음을 알아챈 옥태훈은 한 팔을 높이 들고 신나게 포효했다.
행운의 샷 이글과 함께 단숨에 공동 선두로 올라선 옥태훈은 제대로 상승세를 탔다. 이후 4개 홀 연속 버디 등 무섭게 타수를 줄인 옥태훈은 그렇게도 바랐던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첫 우승을 일궈냈다.
◇124전125기 KPGA 첫 승
옥태훈은 이날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제68회 KPGA 선수권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없이 이글 1개, 버디 7개로 9언더파 62타를 쳤다. 최종 합계 20언더파 264타를 적어낸 옥태훈은 김민규(17언더파 267타)를 3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2018년 KPGA 투어에 데뷔한 옥태훈은 데뷔 후 125개 대회 만에, 데뷔 이전 출전 대회까지 더하면 131번째 대회에서 처음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우승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2년 제주에서 열린 아시안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 한국 대회에서 생애 첫 승을 거뒀지만 유독 KPGA투어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 대회 전까지는 2021년 비즈플레이 전자신문오픈, 지난해 골프존-도레이오픈, 올해 4월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 준우승이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그래도 올해 상승세를 만들어내며 우승 예감을 높였다. 백송홀딩스-아시아드CC 부산오픈 4위,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 공동 5위 등 연달아 톱5를 기록했고 결국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우승상금 3억2000만원을 받은 옥태훈은 상금랭킹 1위(6억1945만원)로 올라섰고 제네시스 대상 레이스에서도 김백준을 제치고 1위(3940.9점)로에 이름을 올렸다. 옥태훈은 “올해 감이 좋았지만 마지막에 미끄러져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며 “침착하게 플레이하자고 마음 먹었고 장점인 집중력을 발휘해 우승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타 차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옥태훈은 이날 ‘버디왕’의 면모를 제대로 뽐냈다. 2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핀 1m 거리에 붙여 첫 버디를 잡았다. 3번홀에서 샷 이글을 터뜨린 뒤 이어진 4번홀(파3)에서 티샷이 벙커에 빠지는 바람에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정확한 벙커샷으로 파를 지켰다. 흐름을 탄 옥태훈은 6번홀(파3)부터 4연속 버디를 몰아쳤다. 6m 이상 거리의 버디퍼트를 떨어뜨리는 등 신바람을 낸 옥태훈은 전반에만 무려 7타를 줄였다. 후반 13번(파5)과 14번홀(파4)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공동 2위 그룹 4타 차로 따돌린 그는 실수없이 18번홀까지 완주하며 여유있게 우승을 확정지었다.
◇자신감 찾고 유럽 떠나는 김민규
준우승은 이날 하루 8타를 줄이는 맹타를 휘두른 김민규가 차지했다. 4타 차 공동 5위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그는 이날 초반 6개 홀에서 3연속 버디 포함 4타를 줄였다. 특히 신들린듯한 롱퍼트로 빠르게 타수를 줄였다. 13번홀(파5)에서는 약 11m 이글 퍼트를 잡아낸데 이어 16번홀(파4)에서도 약 12m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다.
지난해 KPGA투어 상금 2위, 제네시스 포인트 2위를 기록한 김민규는 올 시즌 DP월드투어에 진출했다.
지난 2월 DP월드투어 커머셜뱅크 카타르 마스터스에서 공동 8위를 기록한 뒤 좀처럼 원하는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던 김민규는 이번 대회 준우승으로 자신감을 찾았다. 그는 오는 26일 이탈리아 몬테 아르젠타리오에서 열리는 이탈리안 오픈을 시작으로 다시 DP월드투어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양산=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