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사회인 북한에서 첫째도 아니고 아들도 아닌 어린 딸을 ‘백두혈통’의 후계자로 점찍을 가능성을 낮게 본 것이다. 그 판단은 2023년 말부터 유력한 후계자라는 쪽으로 바뀌었다. 주애는 그해 하반기 김정은만 입고 쓰던 가죽코트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나타났고, 후계자나 수령에게만 쓰는 ‘길을 인도하다’라는 뜻의 ‘향도’, ‘샛별 여장군’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 국정원은 지금은 첫째가 아들인지 분명치 않다고 설명한다.
▷후계자 수업을 받는 듯한 행보로 존재감이 커진 주애는 그제 북한이 공개한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에도 등장했다. 열두 살 주애는 스위스 명품 까르띠에 제품으로 추정되는 시계를 찼고,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키가 170cm 정도인 김정은과 비슷할 정도로 훌쩍 자란 모습이었다. 부인 리설주가 1년 반 만에 나타나 주목됐는데, 더 눈길을 끈 건 김정은, 주애 부녀와의 거리였다. 나란히 걷는 부녀보다 3, 4m 처진 채 뒤따랐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오빠 뒤 멀찍이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피하려던 것과 비슷하다.
▷주애 곁에서 파안대소하는 김정은도 눈에 띄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고령의 장성들에게 주눅 들지 않는 등 자신을 닮은 주애의 성격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한다. 미국에 망명한 김정은의 이모 고용숙은 김정은이 여덟 살 때 장성들을 무릎 꿇린 뒤 충성 맹세를 받았다고 했다. 주애가 김정은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후계자로 확정된 건 아니다. 김정은도 스물여섯에 공식 후계자가 됐고 그 전엔 이복형제 김정남과 권력투쟁을 겪었다.▷누굴 후계자로 하건 북한은 유례없는 3대 세습에 이어 4대 세습을 향해 가고 있다. 북한에는 후계자의 3대 조건이 있다고 한다. ‘다음 세대’, ‘비범하고 뛰어난 예지력’, ‘걸맞은 업적’이다. 세 번째를 위해 대미, 대남 문제든 군사, 경제든 주민들에게 선전해 먹힐 일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2010년 서해상 연평도 포격 도발을 후계의 치적으로 선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후계자의 입지 강화 시도가 우리를 겨냥한 도발일지, 깜짝 협상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주애가 자주 등장하는 지금 평양의 후계 구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