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성향의 스위스국민당이 주도한 이 발의안은 910만 명인 스위스 인구를 2050년까지 1000만 명이 넘지 않도록 난민 수용과 이민을 통제하자는 내용이다. 스위스는 외국인 비중이 28%인데 이민자 증가로 2040년대 초엔 외국인 비율이 더 늘고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민자가 스위스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집값을 끌어올리며, 의료 교육 교통 시스템에 부담을 준다”는 것이 이 안건에 찬성하는 쪽 주장이다.
▷정부와 재계는 의료 관광 금융 등 산업 전반이 이민자 없인 돌아가지 않는다며 부결을 독려했다. 스위스는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여서 숙련된 노동력과 납세자 확보는 더욱 절실하다. 스위스는 자국 제품의 절반 이상을 EU로 수출하는데 EU 시민의 이동을 제한할 경우 EU 시장 접근이 어려워진다. 결국 이민 규제 강화는 스위스판 ‘브렉시트’로 자해적 행위라는 주장이 도시에서 먹히면서 농촌 지역의 압도적 찬성 여론에도 이 안건은 55 대 45로 부결됐다.
▷이번 국민투표 소식에 유럽은 초긴장 상태였다. 유럽 각국에선 반(反)이민 정책을 내건 우경화 세력들이 지지세를 넓혀 가고 있는데 스위스에서 인구 상한제가 채택됐다면 다른 나라에선 이보다 더 과격한 고립주의적인 정책들이 도미노 격으로 제기됐을 것이다. EU 시민에 대한 이민 규제 강화는 ‘단일 시장’과 ‘이동의 자유’라는 EU 체제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기도 하다.▷스위스에서는 10만 명이 서명하면 국민투표가 가능하다. 연간 약 4차례 국민투표를 실시하는데 이민 규제는 2000년대 들어 국민투표 단골 의제로 가결과 부결을 오가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트럼프 관세로 미국과 틀어진 스위스가 EU와의 관계를 해칠 정책을 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스위스는 이민자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덜한 편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빗장을 열고 닫으며 반이민 정서와 경제적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온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에서 인구 상한 제한이라는 전례 없는 안건에 45%가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은 이민 문제가 유럽의 화약고가 돼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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