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완준]파면된 정권의 안보실 차장은 왜 미국에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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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 집권 기간 국가안보실장이 세 번 바뀌는 내내 자리를 지켰다. 윤 전 대통령 해외 순방 브리핑 때마다 실장을 제쳐두고 브리핑을 도맡았다. 거침없는 행보에 실세라는 말이 들렸지만 일본의 과거사 사과에 대해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부적절한 발언 등 설화를 종종 일으켰다. 윤 전 대통령 탄핵과 파면 국면에서 잠잠했던 그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백악관 인사와 나란히 서 환하게 웃는 사진과 함께였다.

▷김 차장 옆 인물은 앨릭스 웡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이었는데 국가안보실은 두 사람이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 만났다고 했다. 두 사람이 협의했다는 내용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역량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협력 방안’과 ‘양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중심이 돼 정부 차원의 조선업 협력을 진전시켜 나가는 방안’이었다. 대통령실은 곧바로 NSC 중심의 조선업 관련 워킹그룹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조선업은 다음 정부가 마무리하기로 한 한미 관세 협상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런데 파면된 대통령을 보좌했던 김 차장이 난데없이 미국에 가 이 현안을 논의했다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더욱이 김 차장이 웡을 만난 시점은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에서 한미 2+2 관세 협상을 벌인 다음 날이었다. 정부 협상팀이 이미 조선업 협력의 비전을 밝히며 의제로 올린 현안을 대통령실이 지원도 아니라 중심이 돼 추진하겠다고 불쑥 발표해 버린 셈이다. 주한미군 문제 역시 미국이 그 역할을 중국 견제로 재조정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며 안보 틀을 크게 흔들 수 있는 이슈라 김 차장이 섣불리 의제로 꺼낼 주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김 차장이 방미 전 다른 부처와 사전에 상의했는지도 불확실하다. 최 부총리는 어제 국회 상임위에서 김 차장의 방미에 대해 “언론에 보니까 그렇더라”고 했다. 가뜩이나 민감한 정부 교체기에 행여 미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까 당국자들이 조심하는 판에, 김 차장은 안보부터 경제 통상까지 협상팀과 상의했는지도 불분명한 협의를 백악관과 했다니 ‘월권’ 논란은 물론이고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실이 미국의 보복관세 발표 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방미 여부를 논의했다거나 한국이 원전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체코를 한 대행이 방문하는 걸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 차장의 ‘오버’가 혹시 한 대행의 대선 출마용 업적을 쌓으려는 시도 아닐까 하는 의심은 그저 오해이길 바란다. 지금 대통령실이 할 일은 인수위 없이 시작하는 다음 정부에 국정 현안을 차분히 인계하는 것이지 돌출 행동으로 불필요한 분란을 만드는 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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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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