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英 첩보기관 MI6 116년 역사상 첫 여성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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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보기관인 비밀정보국(MI6) 국장은 ‘C’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1909년 임명된 초대 국장의 이름인 맨스필드 스미스커밍(Mansfield Smith-Cumming)에서 따온 말이다. 그는 서명할 때 자신의 성 뒷글자 커밍의 ‘C’ 한 글자만 썼고, 그게 국장을 뜻하는 약어로 굳어졌다. 영화 ‘007’에서도 이를 본떠 MI6 국장의 코드명을 ‘M’으로 지었다. MI6 국장은 영국 관가에서 유일하게 공문서에 녹색 펜을 쓰는 공직자이기도 하다. 이 역시 맨스필드가 녹색 잉크로 서명하던 습관에서 시작됐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의 보수적 기풍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 MI6에서 116년 역사상 첫 여성 국장이 임명됐다. 올해 47세인 블레이즈 메트러웰리다. 여성이 국장에 오를 것이란 전망은 지난달부터 나왔다. 차기 국장 후보 3명이 모두 여성이었다. 그중 바버라 우드워드 유엔 주재 영국대사가 유력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 대사를 지낸 경력 탓에 영국에선 “중국에 우호적”이란 지적이, 중국에선 “영국이 심은 스파이”란 비판이 나왔다. 결국 MI6 내부 인사인 메트러웰리가 기회를 잡았다.

▷그의 직전 보직은 요원들이 쓸 최첨단 장비를 만드는 기술 개발 부서장(코드명 Q)이다. 여기서 ‘Q’는 군대에서 무기 보급을 담당하는 병참감(Quartermaster)의 약자다. ‘007’에서도 ‘Q’는 제임스 본드에게 기관총이 숨겨진 고급 세단, 폭발하는 펜 등 기상천외한 장비를 건네면서 사용법을 시연하는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여배우 주디 덴치가 ‘007’에서 MI6 국장을 연기했지만 실제로 여성이 첩보기관 수장이 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스라엘 모사드, 러시아 FSB(옛 KGB)에는 없고, 미국 CIA에선 트럼프 1기 때 임명된 지나 해스펠이 유일하다. 이런 남성 중심적인 문화는 오히려 여성 스파이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한다. 덜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돼 상대를 속이고 설득하는 데 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공감 능력이 좋고, 편안하게 정보 제공자를 무장 해제시키는 데다 냉철함까지 겸비했다는 평가가 많다. 영국 의회는 “정보기관들이 역량을 키우려면 중년 여성과 엄마들을 많이 채용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현대 정보전은 과거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N개의 얼굴’이 요구된다. 동맹국이 과거의 동맹이 아니고, 안보는 대치해도 경제는 손잡으며 교묘히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 모사드가 이란군 수뇌부를 한곳으로 유인해 암살하고, 삐삐 동시 폭발로 헤즈볼라를 붕괴시켰듯 상대의 허를 찌르는 섬세한 작전도 필요하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로는 잘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을 걷어내는 건 유능한 정보기관이 되기 위해서라도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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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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