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가보면 한국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진 것을 체감할 수 있는데, 정작 행복 지수는 매년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 지수는 58위로 전년도보다 여섯 계단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사회적 요인을 차치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시각이 문제여서는 아닐까.
한국보다 사회·제도적으로 여성이 훨씬 억압을 받는 인도의 상황을 생생하게 담은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All We Imagine as Light)’에서는 고달픈 현실에서도 행복을 발견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여성 감독 파얄 카파디아의 장편 데뷔작으로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인도 영화로는 30년 만에 경쟁 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인도 대도시 뭄바이에서 살아가는 세 여성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사회적 억압과 개인의 내면을 시적으로 표현한 영화다.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세 여성은 각각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 간호사 프라바(카니 쿠스루티 분)는 부모가 정해준 중매결혼 후 혼자 독일로 떠나버린 남편과 연락이 끊긴 채 살아간다. 프라바의 얼굴에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으며 깊은 고독을 느끼며 살아간다. 어느 날 발송인이 씌어 있지는 않지만, 남편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전기밥솥이 배달된다. 이 선물이 무슨 의미일까 프라바의 심경은 복잡하지만, 구석에 밀어둔 밥솥을 한밤중에 깨어나 끌어안고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그리움이 드러난다.
프라바의 룸메이트이자 동료 간호사인 아누(디브야 프라바 분)는 무슬림 남자친구 시아즈(흐리두 하룬 분)와 비밀 연애를 한다. 종교적 금기를 초월해 사랑을 추구하는 아누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적극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시아즈와 자유롭게 사랑을 나눌 장소를 찾기도 쉽지 않다.
병원 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 파르바티(차야 카담 분)는 재개발로 오래 살아온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소유권이 사망한 남편 이름으로 됐다는 이유에서다. 파르바티는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이 밀려오는 도시의 변화에 맞서 싸우려 한다. 하지만 여성으로서는 아무런 거주증명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 파르바티는 고향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하고 그를 위해 두 친구가 함께 동행하게 된다.
카파디아 감독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느낌을 준다. 밤의 뭄바이를 담은 장면은 어둡고 몬순 기후의 특성으로 비가 오는 축축한 화면이었지만, 파르바티의 고향으로 떠난 해변가 마을은 밝은 햇살과 알록달록한 조명이 화면을 밝게 한다. 몰래 여행에 따라온 시아즈를 허락한 프라바, 시아즈와 환한 해변에서 사랑을 나누는 아누의 모습은 그간의 상처와 고독을 끝내고 그들이 상상했던 빛으로 나아간다. 엔딩 크레디트를 장식하는 잔잔한 음악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종교적 문제가 사랑에 장애가 되는 일이나 중매결혼의 압박, 여성의 거주존재 증명 같은 불편함이 없는 우리나라는 인도에 비하면 행복의 조건이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눈앞의 행복을 발견하는 시각이다. 우리는 잡기만 하면 되는 눈앞의 행복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