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는 작품에 "최선을 다했다"며 지난 작업 시간을 돌아봤다.
나홍진 감독은 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호프' 인터뷰에서 극중 등장한 외계인 디자인 과정에서 겪은 고충을 털어놓으며 "말도 안 되는 시간을 겪었고, 그렇게 나왔다"며 "드럽게 고생시켰지만, 너희(외계인)들도 징글징글하게 고생했다 싶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호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한 항구에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마을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믿기 어려운 일을 담은 작품. 압도적인 몰입감 and 완성도 높은 미장센, 탁월한 연출력으로 한국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꿔 온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내놓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모았다.
나홍진 감독은 기존 스릴러의 문법을 뒤흔든 강렬한 데뷔작 '추격자'(2008년)로 61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었으며, 처절한 인물들의 사투를 느와르 장르에 담아낸 수작 '황해'(2010년)는 이례적으로 개봉 이듬해인 6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었다. 극한의 몰입도를 선사하며 한국 관객 687만명을 기록한 '곡성'(2016년)은 69회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전 세계 평단과 영화 팬들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나홍진 감독은 '호프'를 통해 인간과 외계인의 입장 차이, 그리고 무지가 빚어낸 엄청난 사건을 독창적 스토리텔링과 강력한 볼거리로 담아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호프'는 20세기에 등장했던 액션 영화들처럼 모든 스턴트를 CG 도움 없이 배우들이 직접 연기하고 촬영하는 클래식한 액션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시골 마을을 공격한 실체를 쫓는 사람들로 시작, 마을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거쳐 새로운 관점으로 전환되고 확장되는 '호프'의 이야기는 상상력과 액션의 박진감, 스릴러의 긴장감과 예기치 못한 유머가 뒤섞인 전에 없던 장르적 재미를 선사한다.
나홍진 감독은 "저는 당연히 실사로 찍는다 생각했는데, 배우들은 CG로 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더라"며 "그걸 촬영이 끝난 후 뒤풀이 때 얘기해서 알게 됐다"고 전해 폭소를 자아냈다. 다음은 나홍진 감독과 일문일답.
▲ 영화 '호프'가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칸 버전과 달리 조금 편집됐다.
= 리뷰를 찾아봤다. 감사할 뿐이다. 몇몇 장면을 걷어낸 게 있었는데, 그걸 다시 살리고, 몇몇 장면을 다시 편집했다. 2시간4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찍어놓고 영화에 손상이 되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 영화 산업이 어렵다고 하는데 손익분기점 700만명이 되는 작품을 내놓게 됐다.
= 그런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곡성'을 끝내고 나서 제가 폭스랑 전속계약이 돼 있어서 미국을 왔다 왔다 하며 사람들과 만났다. 그때 느낀 부분이 '이 시장 자체에 심각하게 큰 변화가 올 것 같다' 싶더라. 그래서 이 작품을 시작할 때 그런 예감을 가진 상태에서 시작을 했다. 그런데 여러 장르를 섞어가면서 내수 시장만으로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제 전작들도 그렇고, 한국 영화 특징이 다양한 장르를 한 편의 작품에 버무리는 거다. Sci-fi 장르도 포함돼 있고, 수준을 높이려 했다. 걱정은 됐다. 무모해 보일 수 있으나, 이게 오히려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왔다.
▲ 10년 만의 작품인데, 작업 기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 처음 초고가 완성된 게 2018년이었다. 그 후에 이 작품을 준비했는데, 공정이 굉장히 많았다. 준비할 게 많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았다. 당연히 이야기도 구체화시켜야 했고, 더 심화시켰어야 했고, 가장 중요한 건 메이킹이었는데, 그걸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촬영부터 장비까지 여러 요소가 많았다. 코로나19가 끝나고 바로 프로덕션에 들어갔다. 바쁘게 영화를 발전시켜갔고, 계속 준비를 했다.
▲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변화된 부분이 있었을까.
= 우리 영화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그런 결을 담고, 느낌을 넣는 거지, 명확한 설정이나 메시지를 넣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때의 감정들이 이 안에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
▲ 외계인 디자인을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 타블로이드에 나왔던 전통적인 외계인 디자인으로 가야겠다고 처음엔 생각했다. 그런데 트렌드라는 게 있고, 국내에 그런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분들이 있는 줄 몰라서 외국 분들과 작업했다. 그때 너무나 많은 설명들을 해주시더라. 그러면서 계속 변화를 겪게 됐다. 1개의 캐릭터를 위해 100개의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사용되지 못한 99개가 있을 거 아니냐. 그런 걸 저한테 제안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렇게 계속 진화시켜나갔다. 디자인이 종결됐다고 생각할 즈음에 또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하게 됐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갔다고 해서 그대로 보이는 게 아니다. CG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움직이면 실사로 찍어도 잘 안 보인다. 크리처 같은 것들은 당연히 합성을 해야 했는데, 명확하게 드러나는 샷들이 없어지게 됐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말도 안 되는 시간을 겪었고, 그렇게 나왔다. 드럽게 고생시켰지만, 너희(외계인)들도 징글징글하게 고생했다 싶다. 만족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 나홍진이라는 사람에 대한 팬들도 많지 않나. 그 부분에 대한 부담감도 있지 않았나.
= 팬이 많은 건 아닌데(웃음), 관객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제가 객석에 앉았을 때 '필름메이커'가 누구냐인 게 저에게 영향을 주더라. 저는 제 영화를 관객들이 그렇게 봐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분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쓸 때부터 많은 생각을 한다. 긴장되는 순간이지만 제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다.
▲ 1980년대 야만의 시대에 외계인이 온다는 설정이 신선하다는 평이다. 출발점은 어디였을까.
= 15년 전쯤 외국으로 여행을 갔는데, 차를 타고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한 동네를 들렀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희한했다. 사람은 없고, 집집마다 이상한 조각상들을 걸어놓아서 대낮인데도 무섭더라. 마을회관쯤 되는 곳에 갔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거기에 있다 보니 한 명씩 모여들어 놀더라. 그때 수첩에 메모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 메모가 이 영화의 시작 같았다. 그 시작점에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이유는 제가 한 사람으로서 일상 속에서 느끼는 것들, 제가 바라보게 되고 집중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다뤄야 할지 고민하면서 '곡성' 때는 초자연적인 부분으로 했다면, 여기서 더 들어가면 어디까지 심화시킬 수 있을지 생각하다 보니 우주적인 지점에서 카메라가 가면 어떨까 싶었다.
▲ 루마니아에서 촬영했다. 업계가 어렵다고 하는 제작 환경에서 고민한 지점이 있었지 않았을까.
= 숲 장면은 루마니아였다. 그 숲 분위기를 찾다 찾다 루마니아까지 간 거다. 마을은 해남이다. 도로는 합천에서 찍었고. 제작비를 설득하는 부분은 어려운 일이다. 그분들도 엄청나게 꼼꼼하게 고민하실 테고, 그분들이 승산이 있다고 여기고 그림이 된다고 해서 하는 게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해선 제가 말하기가 힘들 것 같고.
▲ 배우들과 호흡은 어땠나.
= 우리 배우들은 굉장했다. 가령 말을 탄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합을 맞춰야 하는데, 그런 노력들을 해야 했다. 심지어 촬영 현장에서 저는 몰랐는데 '오케이'가 되고 나서, 모두가 이건 CG로 정리될 줄 알았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걸 저만 몰랐다. 배우들도 그런 얘길 주고받았는지 이상하더라. 저는 '그냥 다 할 수 있다'고 하고, 그러니까 다 기적처럼 해냈다. 달리는 말에서 하는 액션들, 일반인이 하기 힘든데 해주시더라. 자동차를 몰면서 연기하고, 촬영하는 것도.
▲ '타협이 없는 연출자'로 소문이 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하는 지점들이 있었을까.
= 현장에서 타협이 없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얼마나 많은 시뮬레이션을 하고 많은 대안을 만들고, 그게 준비가 돼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것들이다. 그걸 순발력 있게 상황에 맞게 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저는 그게 안 된다면 다르게 가는 스타일이다. 가령 숲을 찍다가 시나리오상에서 몇 컷 남지 않았는데, 더 찍고 싶었는데 촬영감독님이 '그만 찍자'고 해서 정리한 게 있다. 저는 배우들과 스태프를 진심으로 신뢰한다. 그들이 말하면 웬만하면 다 듣는다. 그분들도 터무니없는 말은 안 하니까.
▲ '호프'가 새로운 영화 모델이 된다는 평가가 있다. 이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길 바랄까.
=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에게 절실한 목적과 희망이 있다. 숲에 있는 남자들은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오고 싶다는 바람이 있을 테고,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든 마을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외계인은 어떻게든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목적과 희망이 있다. 이 영화의 주체는 관객이다. 모든 키는 관객에게 있다. 얼마나 호응을 해주시고, 찾아주시고, 이해해주시는지. 부담은 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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