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트업을 두 번 창업하고 운 좋게 엑시트에 성공한 이후, 세 번째 사업을 준비하는 첫 과정은 언제나처럼 시장조사 였다. 시장 규모는 크지만, 아직 제대로 된 플레이어가 없는 영역을 찾기 위한 반복된 탐색. 그렇게 도달한 후보 중 한 곳이 바로 '세무 시장'이다.
핀테크 서비스들은 계좌, 소비, 신용, 송금, 투자, 보험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었지만 유독 '세금'만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세금은 모든 사람이 매 순간 겪는 일임에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낯선 공백은 오히려 큰 기회로 느껴졌다.
세무는 모든 삶과 연결된 중요한 행위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법률처럼 해석 체계가 잘 정리되어 있지도 않고, 금융처럼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는 구조도 아니다. 대부분은 매년 한두 번 고지서나 환급 통지서를 통해 세금을 마주한다.
게다가 국세청이 보유한 원천 데이터는 단순하지 않다. 라벨링이 되어 있지 않거나, 같은 수치라도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기술적으로 보면, 이는 '방대한 반정형 데이터'를 해석하는 문제에 가깝다. 바로 이 복잡성이 기술이 개입할 여지이자, 지금까지 제대로 된 기술 기반 플레이어가 없었던 이유였으며, 우리가 본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세금은 단순히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고 '해석'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동화보다 먼저 '세무 데이터 해석에 기반한 인사이트 도출'을 목표로 삼았다. 방대한 홈택스 데이터를 읽고, 해석해내는 엔진을 구축하며, 사용자가 궁금해하는 핵심 정보를 기술적으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어떤 근로소득자가 올해 환급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일은 단순 계산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신설된 공제 제도는 무엇인지, 사용자의 지출은 어떤 항목에 해당하는지, 기존 연말정산과 종합소득세 신고 결과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다차원적 해석이 필요하다.
우리가 고객에게 제시한 기능 중 하나는 '지금 내가 환급을 받을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기존 서비스가 “O만원 환급 예정”이라는 숫자만 보여줬다면, 우리는 “작년에 비해 신용카드 사용액이 많아졌고, 올해 새로 도입된 교육비 공제를 적용했기 때문입니다”라는 맥락을 함께 전달했다. 세금의 배경을 '언어'로 설명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석에 집중한 방식이었다.
지금까지 세무 서비스는 '세금을 대신 처리해주는 전문가' 혹은 '국세청 시스템을 유사하게 흉내 낸 셀프 신고 서비스' 등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 사용성이 복잡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세무대리인을 쓰기에는 가격이 부담되는 사람들, 무엇보다 모든 단계에 불신과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등 사각지대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토스인컴은 이 사각지대를 비추기 위해 사용성과 접근성, 기술 기반 해석 엔진을 구현했다. 사용자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먼저 판단하고, 그에게 '지금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전달하며, 필요한 세무 행위를 안내하는 동시에 신고까지 자동화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기술적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정보를 어떻게 '친절하게' 풀어주느냐 였다.
이 시장은 이제 막 열리고 있다. 최근 3년간 세법 개정만 수십건에 달하고, 종합소득세 신고 대상자는 1200만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홈택스 API 개방을 시범 도입 중이며, 공공 데이터 활용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기술적 기회, 정책적 변화, 사용자 수요의 증가라는 세 축이 맞물리는 지금이 바로 변곡점이다.
종합소득세 외에도 부가가치세, 양도소득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 수많은 세목이 존재하고, 각기 다른 법 체계와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 시장을 하나씩 해석하고 연결한다면, 세무는 단순한 환급 이벤트가 아니라 삶 전반을 설계하는 장기적 기술 사업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시장에 가장 부족한 것은 '무뚝뚝한 전문가'도, '인터랙션 없는 셀프 서비스'도 아니다. 고객에게 가장 친절하면서도 가장 잘 알려주는 서비스다. 그걸 만드는 사람은 단순한 개발자나 세무 전문가가 아니라, 데이터 속 니즈를 찾아내고 기술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람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박일용 토스인컴 대표 andyou@tos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