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2호선 연가(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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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2호선 연가(戀歌)

당산철교를 가르는 열차가 떠오르는 해 사이로 선명해진다. 서울을 둥글게 감싸안은 초록색 원, 지하철 2호선의 분주한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열차가 정거장에 이를 때마다 승객들은 각자의 속도로 서울이라는 무대 위에 올라선다. 청춘의 열기로 가득한 홍대입구역, 첨단 디지털산업의 메카 구로디지털단지역, 환호와 함성이 일렁이는 종합운동장역,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성수동을 품은 성수역 등은 서울이 얼마나 입체적인 도시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2호선이 다른 노선들보다 더 활기차게 느껴지는 건 서울의 많은 대학을 지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울대입구역, 한양대역 등 대학교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역만 6곳이다. “2호선 타러 가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원이 현수막 단골 문구가 된 지 오래고, 2호선이 지나는 회사에 취업하면 성공했다는 덕담을 듣는다.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2호선 안쪽에 있는 아파트를 사면 실패가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초록색 동그라미 안에 압축된 무한한 꿈과 기회, 서울이라는 도시의 단면을 2호선에서 엿본다. 30여 년 전 첫 공직 생활을 시작한 날도 2호선 위에 있었다. 출근 인파의 물결 속에서 시청역 계단을 오르며 꿈을 새겼다. 매일 숨 가쁘게 흘러갔던 2호선의 풍경이 따뜻하게 기억되는 건 청춘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서울교통공사로 적을 옮긴 지금도 2호선은 여전히 든든한 존재다. 유일하게 적자를 보지 않는 효자 노선이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196만 명을 실어 나르며 60.2㎞를 달리는 2호선은 50개 역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4개 역이 환승역이다. 수많은 선택이 교차하는 갈림길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순환선이라는 독특한 구조 덕분이다.

1970년대 서울은 전체 인구의 72%가 강북 지역에 거주하며 도심 과밀화와 교통 혼잡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서울시는 도시 기능 분산을 위해 구도심은 유지하면서 영등포를 업무지구로, 강남은 새로운 주거지구로 탈바꿈시키는 ‘3핵 도심 계획’을 수립한다. 2호선은 이 청사진 위에 놓였다. 교통망의 확장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할지를 그려낸 상징적 전환점이었던 셈이다.

2호선에 얽힌 숱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저녁이다. 피곤한 눈빛들이 창문에 기대어 있다. 열차가 잠실철교를 지나는 순간, 한강 너머로 펼쳐지는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은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게 만든다. 내리는 문 뒤로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근심은 떠나는 지하철에 두고, 가벼운 마음만 챙겨가세요.” 서울을 둥글게 감싸안은 초록색 원, 2호선의 분주한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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