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들은 완전히 달라진 인재상을 전면에 내세운다. 인류 첫 ‘조(兆)만 장자’ 반열에 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인간적인 깊이와 디지털 유연성”을 꼽았다. 자녀들에게 코딩을 가르치지 말라고 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미래의 가장 강력한 프로그래밍 언어는 인간의 언어”라고 했다. 결국 ‘인간다움’, ‘통찰력’ 등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국내에서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AI 시대에는 세 가지 근육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우선 질문을 통해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생각 근육’이다. 기술 혁신에 뒤처지지 않을 ‘적응 근육’과 다양한 파트너들과 유연하게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는 ‘공감 근육’이 그다음이다. 이런 배경 아래 AI 시대의 주역이자 수혜자인 SK하이닉스가 17일 신입사원 수시 채용부터 ‘4년제 학사 학위 이상’이라는 학력 제한을 없앴다. 생각, 적응, 공감의 삼박자를 갖춘 인재라면 고등학교만 졸업했든, 대학 재학 중이든 미리 뽑겠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명문 대학 간판이 없으면 서류심사 통과조차 어렵다 보니 고육지책으로 법에까지 차별 금지 조항이 등장했다. 1994년 시행된 ‘고용정책 기본법’ 제7조는 근로자를 채용할 때 성별, 종교, 나이, 출신 지역, 혼인이나 임신 여부, 병력 등과 함께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을 막았다. 2014년에는 여기에 ‘학력’을 추가해 대졸, 고졸 등도 구분하지 않도록 했다. SK하이닉스처럼 학벌 기준을 스스로 버리는 기업이 늘면 이 법 조항은 언젠가 사문화(死文化)될지도 모른다.▷다만 학벌을 대체할 공정한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 공공기관에 대대적으로 시행했던 ‘블라인드 채용’은 취지와 달리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지원자들이 그 학력을 얻기 위해 쏟았던 숨은 노력을 평가 절하한다는 반론이 컸고, 그것이 또 다른 ‘불공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오디션’ 형태로 소수 인력을 학력과 상관없이 채용했던 민간 기업들도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SK하이닉스의 도전 역시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AI 도구에 능수능란한 고졸 사원이 핵심 업무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낸다면 채용 시장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빨리 더 큰 폭으로 바뀔 수 있다.
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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