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쓰는 편지라니….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 차라리 배고픈 내가 언젠가 배부를 나에게 쓰는 편지라면 신나서 쓸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은 배고프지만 미래에는 좀 달라져 있을 테지? 그곳은 따뜻하고 사람들 두루 안녕한지, 큰소리로 물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천상병 시인은 태연히 “배부른 내가/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단다. 과거의 자신에게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물으며 그의 심정을 헤아려 보기도 한다. 시를 앞에 두고 왠지 부끄러워 얼굴이 홧홧해지는 까닭은 뭘까. 배부른 나는 배고팠던 나보다 가진 게 없을지 모른다. 배부른 나에겐 용기나 투지, 열정과 모험심, 아량과 겸손이 부족하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하니 도망가고 싶을 수밖에. 그러나 기억하자. 시인은 “배부른 내가/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편지를 쓴다고 했다. 오늘밤엔 기어이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써볼까?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해 미안하다고 사죄해 볼까?
시인은 점심을 먹고 난 뒤의 배부름을 말하고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이 시는 보이는 것보다 크고 깊다. 그 안에 빼곡한 슬픔과 인생의 곡절이 담겨 있다. 그는 인생을 소풍처럼 다녀간 사람, 적은 양식으로도 흡족해하는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시들을 편지처럼 독자에게 전하고, 훌쩍 떠난 사람이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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