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항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인 ‘12년 연속 공항서비스평가(ASQ) 1위’라는 인천국제공항의 위업, 그리고 중규모 공항 부문에서 ‘2년 연속 1위’를 달성했던 김포공항의 성과는 분명 대한민국 항공 산업의 자부심이었다.
빠르고, 쾌적하며, 직원들은 친절했다. 세계인들은 한국 공항의 신속성과 편리함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화려한 찬사에 모두가 만족했고, 공항이라는 공간이 지켜야 할 가장 본질적인 가치인 안전과 보안이 더욱더 중요한 핵심요소라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2026년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하다. 지난 2016년 인천국제공항을 마비시켰던 수하물 대란이 시스템의 경고였다면, 2024년 12월 발생한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는 우리가 안전보다 서비스를, 기본보다 성과를 우선시했을 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보여준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제는 ‘세계 1위 서비스’라는 가치를 유지하되 먼저 ‘가장 안전한 공항’이라는, 다소 지루하지만, 생존과 직결된 목표를 향해 우리 모두가 반성문을 써야 할 때다.
2016년 1월, 인천국제공항 수하물 처리 시스템(BHS) 마비 사태는 세계 1위 공항의 민낯을 드러낸 첫 번째 사건이었다. 수만 개의 가방이 엉키고 항공기가 지연되는 아수라장 속에서, 12년 연속 서비스 1위라는 타이틀은 무색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 사태가 단순한 전산 오류가 아니라, 급증하는 여객 수요를 시설 인프라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예고된 인재라고 지적했다. 서비스 평가 항목인 직원의 친절도나 쇼핑 편의성에 집중하는 동안, 공항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수하물 시스템과 같은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체크하는 것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빠르고 화려한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의 골조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우리는 듣지 못했다. 혹은, 듣고도 무시했다.
그리고 2024년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2216편 참사는 우리 사회에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비극의 원인을 단순히 조류 충돌(Bird Strike)이라는 우발적 사고로 돌려선 안 된다. 조사 결과 드러난 참사의 핵심은 활주로 끝단에 위치한 콘크리트 둔덕(Embankment)이었다.
비상 상황에서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Overrun)했을 때, 승객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완충 지대에 오히려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전문가들은 만약 그곳에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착륙대나 평지가 확보되어 있었다면, 대규모 사망이라는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는 명백한 시설 안전의 실패다. 지방 공항 활성화와 여객 유치라는 구체적인 성과에 집착하느라, 정작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안전시설 개선에는 소홀했던 결과다. 서비스가 승객을 기분 좋게 한다면, 시설 안전은 승객의 안전이다. 무안의 비극은 서비스 점수 100점보다, 제대로 된 안전시설 하나가 더 중요함을 뼈저리게 증명했다.
시선을 해외로 돌려보면, 공항의 안전과 보안이 얼마나 엄중한 문제인지 더욱 명확해진다. 2016년 브뤼셀 공항 테러는 공항의 보안(Security) 패러다임을 바꾼 사건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은 보안 검색대 통과 전인 일반 구역(Landside)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이 사건 이후 유럽의 공항들은 이용객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공항 진입 단계부터의 검문을 강화했다. 2004년 캐나다 핼리팩스 공항 화물기사고 역시 무안 참사와 유사하게 활주로 끝단 구조물이 피해를 키운 사례로 기록되었고, 이후 전 세계 공항들은 활주로 종단 안전구역 기준을 강화했다.
해외 선진 공항들이 서비스 평가 순위가 다소 떨어지더라도 보안 검색을 강화하고, 노후화된 시설 보수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는 이유는 명확하다. 공항의 존재 이유는 쇼핑이나 휴식이 아니라 안전한 이동이기 때문이다. 2018년 런던 개트윅 공항이 드론 출몰로 36시간 동안 폐쇄되었을 때, 그들이 수십만 명의 발을 묶으면서까지 운항을 중단한 것 역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안전 최우선 원칙 때문이었다.
반면 우리는 어떠했는가. 빠른 수속과 편리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보안 검색의 강도를 강화하거나 시설을 보강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는지 자문해본다.
공항은 화려한 쇼핑몰이기 이전에, 거대한 기계 장치이며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프라이다. 인천공항의 수하물 사태와 무안공항의 참사는 우리가 서비스라는 달콤한 과실을 따기 위해 안전이라는 뿌리를 얼마나 방치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서비스 1위라는 타이틀에 집착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서비스 평가는 2등, 3등을 해도 좋다. 하지만 안전과 보안에서만큼은 타협 없는 1등이어야 한다. 화장실이 조금 더럽고, 입국 수속이 조금 늦어지고, 직원의 미소가 덜 하더라도, 활주로 끝에는 콘크리트 벽 대신 안전한 완충지대가 있어야 하고, 수하물 시스템은 어떤 과부하에도 멈추지 않아야 하며, 보안 검색대는 물 샐 틈 없어야 한다.
공항의 진정한 서비스는 승객에게 면세점 할인 쿠폰을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마친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완벽한 시설과 보안을 제공하는 것이다. 무안에서 스러져간 179명의 희생자 앞에, 그리고 여전히 공항을 이용하는 수많은 국민 앞에, 우리는 이제 ‘친절한 공항’이 아니라 ‘안전한 요새’로 답해야 한다. 독일에는 ‘용서하는 도로(forgiving road)’의 개념이 있다. 도로 보수공사 등에서 실수하는 운전자를 대비한 나무목 펜스 등을 반드시 설치해야만 한다. 우리도 이제는 실수하는 조종사를 위한 시설안전의 디테일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이다.
이호진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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