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 품격[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50〉

1 day ago 1

“네 덕에 나도 많이 배운다.”

―김형주 ‘승부’


늘 이기기만 하던 세계 최고의 국수 조훈현(이병헌). 그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기재를 보이는 이창호(김강훈, 유아인)를 거둬 제자로 키운 것. 문제는 너무나 뛰어난 기재를 갖고 있어 제자의 성장이 순식간에 이뤄졌다는 것이고, 그래서 제자를 키운 스승이 도전을 받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는 것이다. 영화 ‘승부’는 바로 이 조훈현과 이창호의 드라마틱한 사제 대결을 통해 진정한 승부의 세계가 무엇인가를 그린 작품이다.

사실 영화는 실화 자체가 가진 힘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조훈현에게 배웠지만 결국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내 스승을 이겨버린 이창호의 등장은 당시 바둑계에 충격 그 자체였다. 1990년 벌어진 최고위전을 시작으로 이창호는 스승의 타이틀을 하나하나 빼앗았고 조훈현의 시대는 저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절치부심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조훈현은 1991년 이창호와 치른 대국에서 명승부를 펼치며 이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바둑에 대한 영화지만 바둑을 몰라도 될 정도로 이 영화는 사제지간이라 남다를 수밖에 없는 승부에 집중한다. 이긴 제자는 마음껏 즐거워하지 못하고, 진 스승은 좌절하면서도 그런 제자를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네 덕에 나도 많이 배운다”며 자신 역시 “언제든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조훈현은 제자에게조차 배울 수 있다는 ‘패자의 품격’을 보여준다. 그는 “창호가 그랬듯이 이제 제가 창호한테 도전하겠다”고 말하는 스승이자 패자다.

‘제자는 스승을 이기는 것만이 참된 보답’이라고 조훈현은 늘 말했다고 한다. 조훈현은 승자도 언젠가 패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중요한 건 패자가 됐을 때 보여주는 품격이다. 불복을 모르는 우리의 현 정치가 한 수 배워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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