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일본인 퍼스트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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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일본인 퍼스트의 함정

“오. 모. 테. 나. 시.”

2013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각국의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됐다. 도쿄올림픽 유치위원인 일본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은 손동작과 함께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한 글자씩 끊어 발음하며 심사위원단을 사로잡았다. 오모테나시는 ‘진심을 다한 환대’라는 의미다. 다키가와는 “그것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호스피탈리티(환대)의 정신”이라며 “왜 일본인이 서로 돕고, 맞이하는 손님을 소중히 하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연설은 일본이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국인 탓이라는 日극우

코로나19 탓에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이 끝난 지 불과 4년 만인 올해 일본에선 환대는커녕 외국인을 배척하는 배외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일본인 퍼스트’를 내건 우익 야당 참정당이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다. 참정당은 양극화 등 사회 문제를 외국인 탓으로 돌렸다.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 수용 제한, 영주권 취득 요건 강화, 외국인의 부동산 매입 제한 등을 제시해 보수층 표를 얻었다. 특히 저임금·고물가에 시달리며 먹고살기 팍팍해진 중산층을 파고들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의 우려는 크다.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김이중 단장도 참정당 돌풍에 충격을 받았다. 지금의 일본에서 외국인 규제를 내세우는 정당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반응이다. 민단은 2016년 특정 인종·민족을 차별하는 ‘헤이트 스피치’(증오 발언)를 막는 법이 일본에서 시행되는 데 기여했다. 일본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재일 한국인들의 우려 섞인 기대다.

작년 말 기준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 약 377만 명이다. 전체 인구 대비 3% 수준에 불과하다. 외국인 근로자는 약 230만 명으로, 역시 전체 생산가능인구의 3%가량에 그친다. 외국인 근로자는 일본인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손 부족에 허덕이는 기업의 도산을 막고 있다. 외국인의 위협이 배외주의로 이어졌다기보단 불만의 배출구가 외국인에게 향한 것이다.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며 중산층의 빈곤화가 가속화한 것이 원인이다.

이민 정책 속도 내야

일본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였던 고(故) 고사카 마사타카는 국가 간 관계가 ‘힘’ ‘이익’ ‘가치’ 등 세 가지 체계의 복합물이라고 했다. 국가는 군사력, 경제력, 전통·문화 등 소프트파워의 종합력이라는 것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일본이 경제력을 유지하려면 외국인 근로자가 필수다. 경제력이 약해지면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예산 확보도 차질을 빚는다. 국제적 소프트파워 역시 외국인과의 공생 전략이 중요하다. 일본인 퍼스트는 결국 국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이득을 보는 것은 참정당뿐이다.

최근 한국에선 결혼이민여성이 ‘민생회복 소비쿠폰’ 수령 인증샷을 SNS에 올렸다가 혐오성 댓글 세례를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유럽 극우 정당의 반이민 주장이 참정당에 영감을 줬듯, 한국에서도 비슷한 정치적 주장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이민 정책은 쓸 생각이 없다’는 일본 정부의 고집이 참정당을 낳았다는 지적도 있다. 늦게나마 이재명 정부에서 이민처 신설이 추진되는 것은 다행이다. ‘한국인 퍼스트’ 주장이 나오기 전에 속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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