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공급망 전쟁이 된 관세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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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공급망 전쟁이 된 관세전쟁

“협상은 매우, 매우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중국과의 관세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지난 10일 영국 런던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협상이 끝난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SNS에 “중국은 미국에 희토류를 즉각 선제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며 “관계는 아주 훌륭하다”고 적었다. 또 양국 협상가들의 합의를 두고 “훌륭한 거래”라며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희토류 카드로 美 방어한 中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미국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다 얻었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의 희토류 공급 약속은 6개월이라는 시한을 두고 있다. 6개월이 지나 중국이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면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수출통제를 양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최종 결과엔 반영되지 않았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AI 칩 수출통제 완화와 희토류 공급을 거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1기 때부터 조 바이든 정부를 거치면서 정교하게 발전시켜 온 반도체 수출통제 시스템이 협상 대상으로 거론된 점 자체가 미국의 다급함을 보여준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공급의 3분의 2를 담당하고, 제련과 가공의 85~90%를 맡고 있다. 예컨대 중국이 독점한 사마륨은 아주 높은 온도에서도 자기력을 유지하는 광물이다. 미사일과 전투기 등에 필수적이다. 이 밖에도 원자력 제어봉, 자동차 엔진 등 현대 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기초 소재로 활용되는 희토류 중 상당수가 중국 손아귀에 있다. 트럼프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관세 부과를 명령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철강, 구리, 목재 등은 그렇게 희귀한 소재는 아니다. 비싸게 사와야 할 때, 모자랄 때는 있겠지만 아예 못 구할 걱정을 할 일은 잘 없다. 희토류는 다르다.

핵심은 가격 아닌 대체 불가능성

트럼프 정부가 야심 차게 시작한 관세전쟁은 근거법의 정당성을 문제 삼은 법원의 제동과 중국의 희토류 카드에 2연타를 맞고 길을 잃었다. 특히 9~11일 런던에서 열린 미·중 2차 관세 협상은 21세기 미·중 체제 경쟁의 핵심 장면 중 하나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펜타닐 유입량, 각국 기업의 이익률, 정부 세수, 소비자물가 등을 논하던 관세전쟁이 이 협상을 계기로 서로에게서 대체 불가능한 것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공급망 전쟁’으로 성격을 바꿨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일한 지나 러몬도 전 상무장관은 지난해 한 포럼에서 “팬데믹으로 ‘경제안보’라는 개념에 새롭게 눈을 뜰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무역은 언제나 자유로울 것을 가정한 과거에는 보지 못한 리스크가 공급망 혼란을 계기로 발견됐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이 미국의 무역 불균형을 실제로 크게 해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환율에 관한 무성한 논의도 실체 없이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다만 이 전쟁에 진짜로 걸려 있는 것이 크리스마스에 나눠 줄 아이들 장난감이 아니라 낯선 이름의 중국산 희토류라는 것을 드러낸 점은 성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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