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지렛대에 올라선 개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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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지렛대에 올라선 개미들

“충분히 긴 지렛대만 준다면 나는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다.”

레버리지(leverage)를 과학으로 처음 증명한 인물인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가 남긴 말이다. 사전에서 레버리지를 찾으면 ‘지렛대의 원리’ 말고도 ‘영향력’이라든지, ‘차입 자본을 활용한 투자’라든지 다양한 의미가 나온다. 하지만 증시 활황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레버리지 하면 다들 이것부터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왜 거 있잖아, 두 배로 먹는 화끈한 거!”

레버리지가 상장지수펀드(ETF)와 결합하면 지수가 올라갈 때 그 이상의 수익이, 떨어질 땐 그 이상의 손실이 나는 고위험 베팅 상품이 된다. 레버리지 ETF가 국내에 등장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0년 ‘KODEX 레버리지’가 시작이니 16년 됐다. 미국 증시에서도 역사가 생각보다 길지 않다. 2006년 ‘프로셰어즈 울트라 S&P500’(SSO)과 ‘프로셰어즈 울트라 QQQ’(QLD)가 최초였으니까 딱 20년이다.

SSO와 QLD를 설계한 사람은 월스트리트에서 일한 한국인 펀드매니저였다. 공교롭게도 한국 주식 투자자에게 ‘레버리지의 민족’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우리나라 ETF 전체 거래량의 90%를 레버리지, 인버스, 곱버스가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비중이 10%대에 그친다. 고위험 상품은 미국 증시에 훨씬 많지만 전통적인 ETF 거래가 워낙 활발해서 그렇다고 한다.

[토요칼럼] 지렛대에 올라선 개미들

매운맛 좋아하는 한국인은 포모(FOMO)의 스트레스 역시 매운맛으로 풀고 있다. 레버리지 ETF는 온라인 사전교육을 1시간 받아야만 거래할 수 있다. 이 교육을 수료한 인원이 3년 전 월평균 7579명에서 올해 들어 14만9948명으로 불어났다.

이런 와중에 삼성전자 혹은 SK하이닉스 한 종목 주가만 따라가는 레버리지 상품이 지난주 등장했다. 코스피지수나 반도체를 따라가는 지금까지 방식보다 한층 더 자극적이다. 사실 단일종목 레버리지는 금융회사들이 “국내에도 만들게 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온 상품이다. 거부하던 정부가 입장을 바꾼 배경은 잘 알려져 있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서학개미를 돌려세워 국장도 살리고 환율도 잡아보기 위해서다.

예상한 대로 ‘삼전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는 삽시간에 조(兆) 단위 돈을 빨아들이며 적지 않은 파급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반도체 ETF 자금이 신상품으로 이동하며 코스닥시장 소재·부품·장비주가 줄타격받은 것이 일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본주의 변동성도 커질 수 있어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출시를 앞두고 금융당국이 배포한 안내 자료를 쭉 읽어 보니, 허용해주긴 했는데 내심 불안해하는 속내가 엿보였다. 하루 수익률이 ‘-60%’에 달할 수 있다는 지렛대 효과, 제값에 사고팔지 못할 수 있다는 괴리율의 함정, 주가가 안 떨어져도 계좌가 녹아버릴 수 있는 음의 복리 효과까지. 단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이해되지 않으면 투자하지 말라”고 줄기차게 경고한 점이 눈에 띄었다. 껍데기만 ETF일 뿐 분산 투자 기능이 전무하다는 이유로 ETF라는 세 글자도 절대 못 쓰게 했다.

‘굳이 이 타이밍에’ 국민을 ‘단타’ 판에 뛰어들게 하느냐는 지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당국만 잡도리할 수도 없는 게, 언제까지 막기만 하는 건 불가능하다. 홍콩에는 한국보다 먼저 SK하이닉스 레버리지가 나왔고, 미국의 테슬라 레버리지(TSLL)는 투자자의 절반 안팎이 한국인이다.

결국 자기책임의 원칙을 말할 수밖에 없다. 금융이 발달하고 기술이 진화할수록 개인 투자자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위험도 동시에 커진다. 주식시장은 코인처럼 24시간 거래 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복잡한 구조를 매운맛으로 덮은 투자 도구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청년이라고, 노인이라고, 주린이라고 봐주지 않을 고위험 상품들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사고팔려면 기존 레버리지 사전교육 외에 1시간 추가 강의를 들어야 한다. “틀어놓고 안 보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이 교육을 수료한 이가 한 달 만에 35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1만피’의 꿈과 ‘과열’ 경고가 뒤섞인 불장에서 이 지렛대 게임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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