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내년 사업계획을 짜야 하는데 핵심 변수인 세제 정책부터 가늠할 수 없어 방향을 못 잡고 있습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일관성을 잃은 정부의 정책 때문에 혼선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기업 실적과 현금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세제 정책만 하더라도 증세와 감세를 동시에 추진하는 바람에 기업들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인공지능(AI)·반도체·2차전지 기업의 세제 혜택 확대 방안을 2025년 세법 개정안에 담는 것을 검토 중이다. 현재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 시설에 투자하는 기업은 규모에 따라 투자액의 1~10%를 세액공제받을 수 있다.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AI 데이터센터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되면 세액공제율이 15~25%로 올라간다.
반도체·2차전지 기업에 생산세액공제 제도를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생산세액공제는 국내에서 특정 제품을 생산한 기업에 생산량만큼 세금을 공제해주는 제도다.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고용을 촉진하려는 감세 정책이다.
반면 이 같은 인센티브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인세 인상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현재 24%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올리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세액공제로 깎아준 세금을 법인세율을 올려 다시 걷겠다는 것이다. 재계에서 “가뜩이나 미국의 관세 정책 같은 대외 변수로 어려운 상황에서 상충하는 세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 기업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자본시장 과세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통해 투자자의 세금 부담을 낮추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기업의 배당 확대를 유도하고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증세 정책도 불쑥 꺼내 들었다. 기획재정부는 상장사 대주주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단계적으로 인하해 온 증권거래세율 인상도 고려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 같은 세제 정책이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 유인을 꺾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양도세를 피하려는 ‘큰손’ 투자자들이 연말에 주식 매물을 쏟아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증세와 감세를 동시에 추진하는 모순된 세제 정책을 동시에 검토하면서 투자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세법 개정안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원론적인 설명자료만 반복해서 내고 있다. 기업과 투자자들이 정부의 책임 있는 답변을 학수고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