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아파트 내 '로봇주차 시스템' 막는 철통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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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아파트 내 '로봇주차 시스템' 막는 철통 규제

“로봇 주차로 아파트의 고질적 문제인 주차난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국내에선 규제 때문에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지난 6일 태국 방콕에서 만난 로봇 주차 시스템 제조기업 셈페르엠의 한 임원은 “로봇 주차 시스템 사업을 7~8년 전 태국에서 먼저 시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도 로봇 주차 사업을 하고 있지만 확장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국내에서 한계를 느낀 건 규제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령인 ‘주택 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6조의 2’에 따르면 기계식 주차장은 상업지역, 준주거지역 내 소형 주택, 주택 외 시설을 건축할 때만 허용된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엔 기계식 주차장을 설치할 수 없다는 뜻인데, 문제는 로봇 주차 시스템이 기계식 주차장으로 분류돼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내 전체 주택의 79%를 차지하는 아파트나 주택 외 시설이 포함된 복합건축물엔 로봇 주차 시스템을 도입할 수 없다.

또 ‘기계식 주차 장치의 안전 기준 및 검사 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6조’에 따르면 주차장에 수용할 수 있는 차량의 입·출차 합계 시간이 각각 2시간 이내여야 한다. 화재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한 규정으로 일반적으로 기계식 주차장 하나에 60대 정도가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태국 현지에서 보니 로봇 주차 기기 하나로 100대까지 출차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구닥다리 기계식 주차장 관련 규정을 첨단 로봇 주차 시스템에 적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는 얘기다. 게다가 로봇 주차 시스템은 일반 주차장보다 경제적이다. 9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에 로봇 주차 시스템을 설치하면 차량 20대까지 세울 수 있다. 로봇 주차 시스템이 주차장 건설 비용을 낮추고 공사 기간을 줄여 아파트 분양가 인하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업계에선 이런 장점을 감안해 비현실적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파트의 기존 주차장과 함께 로봇 주차 시스템을 병행 설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태국에선 본인이 주차하는 ‘자주 주차장’과 로봇 주차장을 함께 설치한 건물이 많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특정 업체에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특혜 유무가 아니라 어떤 결정이 공공 이익에 부합하는지다. 정부는 안전성 기준만 철저히 검증하고, 어느 주차 시스템을 도입할지는 건축주와 재건축조합 같은 시장에서 판단할 문제다. 우리가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사이 중국 같은 나라들이 9조원대 세계 로봇 주차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는 점을 규제당국은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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