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배상까지 했는데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또 내라는 건 지나치지 않나요. 과징금이 줄어든 것은 다행이지만 씁쓸합니다.”
최근에 만난 시중은행 임원은 이같이 푸념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일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은행에 부과한 과징금을 1조4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감경하는 안을 의결했다. 금융위원회가 금감원에 다시 판단할 것을 요구해 이뤄진 심의이기 때문에 큰 변수가 없다면 최종 금액이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은행들은 과징금이 줄어든 데 안심하면서 마냥 기뻐하진 않는 분위기다. 손실을 본 투자자들에게 이미 1조3000억원을 자율배상하고도 과징금까지 내게 한 것은 과도하다고 느껴져서다. 이 사태가 불거진 2024년만 해도 금융당국은 “자율배상은 제재 경감 사유”라며 은행에 신속한 자율배상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손실 난 이유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ELS 투자자에게 자율배상을 했다.
하지만 은행 잘못이 아니라 본인 판단으로 ELS에 투자한 고객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법정에서 연이어 드러났다. 지난해 9월 국민은행 승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ELS 손실 책임을 둘러싼 하급심에서 은행이 이긴 사례만 10건이 넘는다. 사태 전에 여러 차례 비슷한 구조의 ELS에 투자한 사람도 있었다.
은행이 불완전판매로 얻은 부당이득도 과징금에 한참 못 미친다. 금감원은 이번 사건에서 5개 은행의 부당이득을 1000억~1100억원으로 책정했다. 과징금의 6분의 1 수준이다. 금융권에서 무거운 제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들은 이익에 눈이 멀어 문제 많은 ELS를 팔았다는 낙인이 찍히고 이에 따라 과도한 제재를 받은 점을 억울해한다. 한층 엄격해진 규정 때문에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5개 은행은 2023년 11월 ELS 판매를 중단한 뒤 아직까지 판매 재개 시기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비판을 감수하면서 판매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이익이 얼마나 날지 장담하기 어려워서다. 은행이 ELS를 판매하려면 지정 점포에서 일반 창구와 분리된 전용공간을 마련하고, 과거보다 투자 위험을 더욱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은행원들 사이에선 “이러고도 나중에 손실 문제가 불거지면 또 은행이 책임지라고 압박받을까 걱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불완전판매는 명백한 잘못이다. 하지만 처벌과 규제만 강조하다 보면 투자자의 선택지를 줄이고 시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보호와 금융산업 발전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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