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트럼프발 사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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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4.09 17:20 수정2025.04.09 17:20 지면A31

“치약부터 비누까지, 보관할 공간만 있다면 뭐든지 사놓으세요.”

미국프로농구(NBA) 팀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이자 억만장자 사업가 마크 큐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지난 2일 SNS 블루스카이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유통업체는 미국산이라도 가격을 왕창 올리고 관세 탓이라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자칼럼] 트럼프발 사재기

큐번 구단주의 주장이 먹힌 것일까. 미국 소비자들이 사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식료품과 의약품 등 일부 품목에서만 사재기 현상이 나타난 코로나19 때보다 비축하는 제품이 훨씬 다양하다. ‘둠 스펜딩(Doom Spendig)’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충동적 소비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이미 월마트 등 미국 대형마트에선 ‘9.99달러 할인’ ‘1+1 판매’와 같은 판촉 행사가 대부분 사라졌다. 가만히 있어도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잇는 상황에서 마케팅 비용을 들일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가격이 오른 뒤 팔기 위해 전략적으로 재고를 비축하는 업체도 적지 않다.

특히 스마트폰, TV 등 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만드는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블룸버그는 지난 8일 미국 전역의 애플 매장이 연말 성수기처럼 북적였으며, 손님 대부분이 언제 아이폰 가격이 오를지를 물었다고 보도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애플이 미국에서 최상급 모델인 아이폰 16 프로 맥스의 가격을 최대 350달러(약 52만원)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행정부는 어제부터 베트남(46%), 태국(36%) 등에서 제조한 대미 수출품에 30~40%대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보복관세가 더해지면서 관세율이 104%로 뛰었다. 관세 여파는 한두 달 후부터 미국 물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재기는 홍수나 화재, 지진, 전염병 같은 천재지변이 터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 소비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 관세 부과를 재난에 준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성난 미국 소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주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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