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체육관엔 감독이 산다…프로농구 LG 첫 우승 이끈 조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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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꺾고 챔프전 마침내 우승…지난 시즌 4강 PO 탈락 아픔 딛고 대업

김승기, 전희철에 이어 선수, 코치, 감독으로 정상 밟은 역대 세 번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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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조상현 감독 '어려운 1승'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15일 경남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시즌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서울 SK 나이츠의 챔피언결정전 6차전 경기. LG 조상현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25.5.15 image@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프로농구 창원 LG가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창원체육관에는 세탁기가 2대다.

선수들의 운동량은 많지만 세탁기는 두 대뿐이라 가끔은 빨랫감이 쌓인다.

지난 시즌의 어느 날 한 베테랑 선수가 세탁기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빈 세탁기가 없었다.

그중 한 세탁기의 세탁물을 확인한 그는 깜짝 놀랐다. 안에는 와이셔츠 하나뿐이었다.

'누가 와이셔츠만 달랑 세탁한 걸까'라는 생각에 잠긴 이 선수의 의문은 곧 풀렸다.

조상현 감독이 빨래가 끝난 와이셔츠를 찾으러 왔기 때문이다. 창원체육관에 머무르는 시간이 워낙 길어 생긴 해프닝이었다.

자택이 서울인 조상현 감독은 창원에서는 주로 체육관 내 감독실에서 지낸다.

빨래는 손으로 빨거나 선수단 훈련장에 설치된 세탁기로 해결한다. 경기 영상을 분석하다가 감독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사실상 감독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런 생활을 수년째 지켜본 LG 관계자들이 건강을 걱정할 정도다.

한 관계자는 "일찍 출근하시고, 늦게 퇴근하시는 감독님의 생활은 올 시즌도 똑같다. 시간을 정확히 재지 않아 지난 시즌이랑 근무 시간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체육관에 오래 계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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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현 감독 '잘했어'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28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KCC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울산 현대모비스와 창원 LG의 3차전에서 LG 조상현 감독이 선수들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2025.4.28 yongtae@yna.co.kr

주변에서 '일중독'이라고 의심하는 조상현 감독은 17일 서울 SK와 2024-2025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 7차전 승리를 지휘하면서 우승 사령탑이 됐다.

프로 농구 원년 구단 LG는 창단 28년 만에 처음으로 챔프전 우승 샴페인을 터뜨려 비원을 마침내 풀었다.

2022년 LG 지휘봉을 잡아 처음으로 프로농구 사령탑에 앉은 조상현 감독으로서도 뜻깊은 순간이다.

감독으로 맛본 첫 우승으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선수로 뛴 LG에 구단 사상 첫 우승의 기쁨을 안겼다.

이번 우승은 조상현 감독의 '뚝심'이 만든 성과다.

조상현 감독 체제의 LG는 프로농구 최고의 수비팀으로 자리 잡았다.

첫 시즌인 2022-2023시즌부터 최소실점(76.6점)을 달성한 조상현호 LG는 2023-2024시즌(76.9점)에 이어 올 시즌(73.6점)에도 타이틀을 지켰다.

세 시즌 동안 LG와 맞붙은 팀들의 필드골 성공률은 43.6%까지 떨어졌다.

조상현 감독에게 공격보다 수비에 중점을 두는 이런 스타일은 지도자로서 농구 철학이라기보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아셈 마레이, 이재도(소노), 이관희(DB) 등 처음 LG 지휘봉을 쥐었을 때 선수 구성을 보고 '이 선수들로는 공격 농구를 할 수 없다'고 조상현 감독은 판단했다.

이 같은 조상현 감독의 직관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마레이, 이재도, 이관희가 함께한 2022-2023, 2023-2024시즌의 LG는 모두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해 4강 플레이오프(PO)에 직행했다.

하지만 두 시즌 모두 챔프전 무대를 밟지 못하고 짐을 쌌다.

지난 시즌 4강 PO에서 수원 kt와 치열한 승부를 펼친 LG는 안방에서 열린 운명의 5차전 전반 종료 1분여 전 16점을 앞서 챔프전행 티켓을 따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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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LG 조상현 감독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9일 경남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시즌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서울 SK 나이츠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 경기. 창원 LG 조상현 감독이 심판과 대화하고 있다. 2025.5.9 image@yna.co.kr

그러나 연속 실책으로 흐름을 내준 뒤 후반에만 실책 9개를 헌납하고 역전패를 당했다.

경기 후 취재진 앞에서 좌절감을 감추지 못한 조상현 감독은 이재도, 이관희를 모두 다른 팀으로 보내는 과감한 선수단 개편을 감행, 새 시즌 승부수를 던졌다.

개인 공격력은 뛰어나지만, 공격 효율성이 떨어졌던 이재도·이관희가 떠나자 양준석, 유기상 등 젊은 선수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주전 포인트가드로 올라선 양준석은 정규리그 평균 실책이 1.6개에 불과할 정도로 안정적 경기 운영 능력을 뽐내 '조상현 농구'의 완성도가 더욱 올라갔다.

외곽에서는 양준석, 골 밑에서는 마레이가 버텨주면서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느리지만, 가장 안정적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LG의 농구가 결실을 봤다.

올 시즌 LG는 경기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KBL이 활용하는 '페이스' 지표가 71.2로 10개 구단 중 가장 낮다.

경기 흐름을 조상현 감독의 의도대로 통제하는 LG의 '느림보 농구'가 나타난 셈이다.

상대에 대한 '현미경 분석'과 뚝심으로 대업을 일궈낸 조상현 감독은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맛본 인물로 기록됐다.

김승기 전 소노 감독, 전희철 SK 감독에 이어 KBL 역대 세 번째다.

슈터로 1999-2000시즌 청주 SK의 우승을 이끈 조상현 감독은 코치로 2015-2016시즌 고양 오리온의 우승에 일조했고, 9년 뒤에는 사령탑으로 프로농구 정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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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좋은 LG 세이커스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15일 경남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KCC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서울 삼성 썬더스 경기. LG 유기상이 4쿼터 종료 수십초를 남겨두고 골을 넣자 LG 조상현 감독, 선수단, 팬이 기뻐하고 있다. 2025.1.15 image@yna.co.kr

pual07@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17일 16시32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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