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은 임진왜란 당시에도 이미 있었다. 나중에 한양을 회복하고 왜군이 남해안으로 후퇴해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늦게나마 한양과 영남 간 관문인 조령을 요새화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조령의 지리에 밝은 인물을 선택해 축성을 추진하게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산에는 샛길이 너무 많았다. 그 모든 길을 완벽하게 차단하기란 불가능했다.
설사 신립이 조령을 막았다고 해도 왜군은 조령 한 길로만 오고 있지 않았다. 신립의 병력은 7000명보다 조금 많았고, 조직적인 훈련이 되지 않은 군대였다. 신립은 사실 우왕좌왕했다. 조령, 충주성 남쪽 남한강의 나루, 충주성 등 막아야 할 곳은 너무 많았고, 어느 곳 하나 제대로 막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하나를 완벽하게 막고 초전에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다른 경로를 통해 왜군에게 후방이나 측면을 공격당할 상황이었다.
실록에 근거해 아무리 이런 얘기를 해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 아니, 신립이 조령을 막았더라면 왜군을 격퇴하고 임진왜란은 초반에 승리로 끝났을 것이라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험준한 고갯길 하나가 전쟁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세상에서 정복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한니발과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을 수도 없었고, 알렉산드로스가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할 수도 없었다. 아니, 일본의 전국시대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어야 하지 않나.
확고한 가치관으로 결론과 방법을 정해 놓은 사람을 설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역사를 볼 때 상황을 움직이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선동가다. 이런 불편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지금껏 생존하고 있는 이유는 선동과 탐욕이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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