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북한 해외 여성 노동자들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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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중국 지린성 훈춘 변경경제합작구에 파견된 북한 여성 노동자들이 작업장으로 향하는 모습. 중국에는 북한 노동자 작업장이 여전히 많이 있다. 동아일보DB

2015년 중국 지린성 훈춘 변경경제합작구에 파견된 북한 여성 노동자들이 작업장으로 향하는 모습. 중국에는 북한 노동자 작업장이 여전히 많이 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시집 잘 가려다 홀아비한테 가게 생겼다.”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여성 노동자 수만 명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요즘 세계의 관심사가 러시아 파병 북한 군인들에게 집중돼 있다 보니 중국에서 감금 노예처럼 일하는 수만 명의 북한 여성 문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노동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 파견돼 최소 6년 넘게 갇혀서 일만 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귀국 지시는 없다.

현지 관리자들은 지난해 1월 중국 옌볜에서 일어났던 것 같은 북한 노동자 폭동이 또다시 일어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 노동자들이 고용된 대다수 공장들에서 분노가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북한은 최근 각 공장마다 매달 문제를 일으킬 만한 몇 명을 추려서 귀국시키라는 지시를 내렸을 뿐이다.

노동자 중엔 중국에서 3년 정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좀 모아 시집갈 밑천을 마련할 생각으로 온 처녀가 많다.

하지만 코로나19 국경 봉쇄가 끝났어도 귀국 지시가 떨어지지 않아 20대에 나온 여성들 나이가 어느새 30세가 넘어가게 됐다. 북한에선 30세 넘은 여성은 노처녀 중의 노처녀로 간주돼 결혼이 어렵다. 돈이 좀 있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돈도 많이 벌지 못했다. 6년 정도 일하면 평균 5000달러 정도 모으게 된다. 야근과 특근을 도맡아 죽어라 일만 하면 8000달러까지 벌 순 있지만 이는 극소수에 해당한다. 이 돈으로 북한 대도시에서 집 한 채 사기도 어렵다. 아이를 북한에 두고 온 유부녀 노동자들도 6년 넘게 집 소식을 알 수 없어 화가 나긴 마찬가지다. 북한은 중국에 나와 있는 노동자들이 가족과 연락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집 소식을 들으면 동요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편지도 전화도 할 수 없으니 집에서 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고, 그동안 번 돈을 고향에 보낼 수도 없다.

언젠가 귀국하더라도 이들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일부 먼저 귀국한 노동자 중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3년이나 모르고 있었다”거나 “가족이 먹고살기 힘들어 집까지 팔고 거지가 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절규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상처는 평생 아물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파견 노동자들을 귀국시키지 않는 이유는 대체할 신규 노동자 파견이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북-중 관계가 악화돼 온 결과 중국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를 이유로 북한 노동자를 받지 않고 있다. 북한은 중국에 파견된 노동자 월급의 80% 이상을 빼앗아 간다. 노동자들은 노동당의 중요한 돈줄인 것이다.

중국에 파견된 여성들은 피복, 수산물, 식당 등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중국 공장들은 남성보다 관리가 쉬운 여성들을 선호한다. 숙소만 마련해 주면 북한 관리자들이 알아서 노동자들을 감금하고 통제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파견된 공장마다 ‘삼촌’이라 불리는 북한 남성 부사장이 한 명씩 같이 나가 있다. 이 삼촌들이 공장 소속 여성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실질적 관리자다.

삼촌은 나이 많은 여성을 반장이나 조장으로 임명해 통제하게 한다. 여성들을 관리해야 하니 북한 측 사장으로 여성을 내세우긴 하지만 사실상 ‘바지 사장’일 뿐이다.

요즘 바지 사장들은 “이젠 총각에게 시집가기 틀렸다”고 한탄하는 노동자들을 “간부 나부랭이들이 참 너무하다. 자기 자식이면 그러겠느냐”며 열심히 다독여 준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겁이 나는 것이다. 수많은 여성의 고혈을 짜내서 먹는 데 맛을 들인 북한은 앞으로도 그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달 중순 한 러시아 매체에는 모스크바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여성 근로자 수백 명이 일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됐다. 이들은 ‘러시아판 쿠팡’이라고 불리는 러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와일드베리스’ 물류창고에서 일하고 있었다. 중국에 노동자들을 파견하기 어려워지자 슬그머니 러시아에 보낸 것이다. 러시아에 파견된 노동자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점점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이들이 번 돈을 빼앗아 평양에 고층 아파트들을 짓고 인민 낙원을 만든다며 생색을 내고 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죽는 청년들의 목숨과 노예가 된 여성들의 눈물로 쌓은 ‘낙원’ 위에서 김정은의 웃음소리만 높아진다.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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