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진입 단계’, 좋아서 시작하는 시기다. 내가 속한 업계를 포함한 문화산업계 전반의 공통점은 진입 경로가 불분명하고 보상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지인을 만들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든, 학원을 다니든, 그 과정에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일이 찾아온다. 그게 별일이 아니어도 당시에는 큰 기회로 느껴진다. 좋아하던 일을 시작하는 거니까. 그때까지는 내부인이 아닌 외부인, 생산자보다 소비자에 가깝다. 괜찮다. 누구나 그렇게 시작하니까. 그렇게 어떤 업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두 번째 단계가 온다. 바로 좋아서 참는 시기, ‘인내 단계’다. 진입 경로가 모호하고 보상이 미약한 업계의 특성은 이 단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경험과 연차는 쌓이고 생계도 꾸려가지만, 이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발전적으로 변할지는 알 수 없다. 진입 단계와 인내 단계에서 일을 시작한 동료들은 슬슬 떠나간다. 다른 직군으로, 다른 지역으로, 혹은 결혼 등 삶의 다른 국면으로, 아니면 아무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는 식으로 말이다. 이 시기에는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시간도 빨리 간다.
시간이 더 지나면 어느새 세 번째 단계인 ‘응고 단계’에 들어선다. 좋게 말하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아니면 다른 길을 가기에는 이 길로 너무 멀리 와버렸거나. 자리를 잡은 듯 보이지만 안정적인 무언가나 확실한 성취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온 것을 버리자니 아깝고, 앞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여유도 없다. 좋은 일들 덕분에 ‘내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스스로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에도 모호하다. 실은 지금 내가 그 단계에 있다.경험상 각 단계를 지날 때마다 고비가 찾아왔다. 잡지 에디터인 내 경우를 돌아보면 진입 단계부터 ‘이때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얄궂게도 재미있는 일들이 생겼다. 모든 것이 업무 경험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점점 더 고되어졌고, 업계도 변해갔다. 진지하게 ‘더 늦기 전에 이 일에서 빠져나와야 하나’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동시에 그것을 견뎌낼 만큼 좋은 일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됐다.
이런 단계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좋아하는 마음은 좋지 않은 마음을 지워주는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이 시작하던 시기의 불안과 견디는 시기의 고통을 상쇄해 준다. ‘그래, 그래서 내가 이 일을 좋아했지’ 혹은 ‘그래, 내가 이런 걸 하고 싶었지’라고 느끼는 기분이 무엇보다 큰 기쁨이 된다. 다만 그 기쁨이 삶에서 정말 중요한지 혹은 스스로를 속이는 달콤한 주문인지는 모르겠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2 weeks ago
15
![[토요칼럼] 탈모와 도수치료 논쟁이 남긴 숙제](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바로잡습니다] 6월 29일 자 A2면 ‘3년전 환경부 “영산강 물 부족, 여수산단 공급도 우려”’ 기사의 외](https://it.peoplentools.com/site/assets/img/broken.gif)
![[사설] 올해 157조 주식 판 외국인, ‘반도체 경고음’도 대비해야](https://www.chosun.com/resizer/v2/VS5G6KGOBRJH5H7CNQUX4ZJBDM.jpg?auth=b0c630e2d0b42d27ab9b0d84aeac24a096e6f8ae3a1e99990d111439a2fbf454&smart=true&width=5468&height=3212)
![[사설] 검·경이 서로 견제해야 하는 이유 보여준 ‘광주 여고생 피살’](https://www.chosun.com/resizer/v2/GVRDKZJYHA4GKZJUMVSWMODBGI.jpg?auth=2cd725682d366c5b9159cc774dbbeecb1116bcd1eef211ef1389f11ff74f0d99&smart=true&width=2496&height=1712)
![[사설] 한 달 만에 지방선거 전으로 돌아간 국힘 지지율](https://www.chosun.com/resizer/v2/G5QTOYJSMY3TCM3EGNSTGZJUHE.jpg?auth=1f97a6ad5f2520259961812018239f2cc0022e6b81bdf37f027a07f624e5de4f&smart=true&width=5294&height=2637)
![[강천석 칼럼] 호남 반도체, 정책 壽命 5년 넘을까](https://www.chosun.com/resizer/v2/UP25ZI3WNVEQ7KWMW4S2ICHWZY.png?auth=49c888a405cbb99306e5d7401b46e19eb7bbf58606a8e94c45a908687a485da1&smart=true&width=1200&height=855)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347] 피아트의 도시 토리노](https://www.chosun.com/resizer/v2/A5CUINZRRBD4FM2ECFIPIRFBTA.png?auth=18dd39a8c512cd31171b07b090bb5d118743664f4c1416fdf327668d058cdfe3&smart=true&width=2033&height=1413)
![[월드컵] 미 복수 비자 발급받은 이란 토라비…'가시밭길' 대표팀 숨통](https://img5.yna.co.kr/photo/reuters/2026/06/16/PRU20260616240001009_P4.jpg)


![[G-브리핑] 컴투스, 임직원 참여형 ESG 플로깅 활동](https://pimg.mk.co.kr/news/cms/202606/11/news-p.v1.20260611.0f1bb9233318459cb7ad7f04a40a2d5c_R.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