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352〉 [AC협회장 주간록62] '규제혁신기준국가' 선언, 말이 아닌 제도로 증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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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352〉 [AC협회장 주간록62] '규제혁신기준국가' 선언, 말이 아닌 제도로 증명하라

규제개혁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사실 매 정권마다 '규제개혁'은 등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늘 비슷했다. 실증특례나 규제자유특구 같은 제도적 장치는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왜일까. 문제는 접근 방식이다. 기존 규제기관이 기존 법률 틀을 유지한 채, 일부 신산업에만 적용 예외를 두는 방식으로는 혁신을 따라잡을 수 없다. 혁신은 제도의 틀 밖에서 시작되지만 기존 제도는 그 틀 안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정부가 규제혁신기준국가를 진정성 있게 구현하려면 '규제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새롭게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규제 정비를 넘어, 규제 설계 권한을 민간과 현장으로 이양하는 시스템 변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술변화 속도가 빠른 분야(AI, 바이오, 모빌리티 등)에서는 민간 협의체와 전문가 집단이 직접 규제초안을 작성하고, 정부는 이를 승인·보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정부 중심의 규제 해석'이 아니라 '현장 중심의 규제 설계'로 전환이다.

산업 간 융합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규제는 기존 산업구조에 기반한 부처별 분절형 구조로는 대응할 수 없다. 예컨대 푸드테크는 농림부, 복지부, 산업부, 식약처의 규제를 동시에 따라야 한다. 핀테크는 금융위, 행안부, 과기정통부, 개인정보위의 다중 허가를 거쳐야 한다. 이 구조에서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시장 출시까지 수년이 소요된다. 이를 해소하려면, 신산업 규제를 위한 일원화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대통령 직속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가 각 부처를 조정하며, 법적 구속력을 갖는 규제 간소화 권한을 가져야 한다.

규제는 단지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가의 대외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오늘날 글로벌 자본과 기업은 '기술'만이 아니라 '환경'을 보고 움직인다. 규제가 많은 국가는 그 자체로 투자유치 장애요소며, 해외 진출 스타트업도 국내 제도 때문에 IP 관리, 데이터 이전, CRO 연계 등에서 걸림돌을 겪고 있다. 한국이 진정 스타트업 친화국가가 되려면, 규제 수준도 OECD 평균 이하로 맞추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계량화된 지표(K-규제지수 등)로 관리해야 한다.

현실은 심각하다.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 중 17곳은 한국에서 현행 법률상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공유숙박은 관광진흥법과 공중위생관리법에, 원격의료는 의료법에, 핀테크는 은행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힌다. 특히 AI, 디지털헬스, 모빌리티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는 과거 산업구조에 기반한 규제로 인해 거의 모든 영역이 제약을 받는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규제혁신기준국가 목표제'를 제안했다. 핵심은 명확하다.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과도한 규제는 전면 폐지한다'는 선언적 원칙을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OECD 평균보다 규제 강도가 높은 산업은 우선 정비 대상으로 지정하고, 규제 신설 시에는 반드시 사전영향평가와 비용분석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첫째, 사전허용·사후규제 원칙을 제도화해야 한다. 기존에는 법령에 명시되지 않으면 불법으로 간주되는 '포지티브 규제'가 기본이었다. 그러나 신산업은 처음부터 제도 바깥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 체계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독일, 영국, 싱가포르처럼 먼저 허용하고, 위험이 발생할 경우 규제하는 '네거티브 규제' 전환이 절실하다.

둘째, 규제 권한의 지방 분산이 필요하다. 중앙부처 중심 권역별 일괄 통제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예컨대 드론택시, 로봇배달, 스마트팜, 디지털헬스 같은 신산업 실증은 지역별 여건과 시민 수용성에 따라 실험하고 조정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규제를 해석하고, 기업과 협력해 규제특구를 운영할 수 있는 권한과 재정이 보장돼야 한다.

셋째, 규제 샌드박스의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 현재 샌드박스는 일회성 실증에 그치며, 기간 만료 후 제도화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샌드박스 적용 이후 일정 기간 내 제도 반영 여부를 심의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자동 연장 또는 전면 허용하는 '사후 일몰제'를 도입해야 한다.

규제혁신은 정치적 구호가 돼선 안 된다. 그것은 법과 제도 문제이며, 국가 철학 반영이다. 새로운 정부는 '규제혁신기준국가'를 말로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제도 설계와 실행계획으로 증명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기업이 아닌 시민처럼 취급받는 한, 벤처국가의 미래는 없다. 이제는 규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허용하는 법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짜 규제혁신이다.

전화성 초기투자AC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glory@cnt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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