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행복은 커피 한 잔만큼 가벼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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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사랑에 빠질 때 사람은 행복하다고 한다. 사랑과 행복은 동시적 경험인가? “사랑하였음으로 행복하였네라”고 노래한 시인은 틀렸다. 나는 그게 사실과 부합되는 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의 초기에 상대를 이상화하며 열광에 빠진다. 과도한 도파민 분비로 행복감에 젖어 몽롱함을 겪는 시기가 지나면 사랑은 사소한 곤란으로 권태와 회의를 낳는다. 이때 사랑은 행복이 아니라 이해타산을 따지며 세속화로 물든 채 치사한 감정 분쟁이나 격분을 낳는 골칫거리가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랑의 발화점이던 비이성적 열광은 종말을 향해 내닫는다. 많은 사랑이 이 위기를 넘지 못한 채로 깨지기 일쑤다.

그것은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아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행복은 커피 한 잔만큼 가벼운 문제다

내 경험에 비춰본다면 사랑이 불러오는 행복은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다. 사실 행복은 대단한 기적의 순간이 아니라 인생의 평범함에 주어지는 보상이다. 우리는 행복이 비범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평범함이 가진 견인력은 행복을 낳는 견고한 동력이다. 그것은 현실 조건이 빚는 비현실적 몽환이 아니라 불행의 회피를 통해 주어지는 짧은 방심에 깃드는 광휘다. 불행이 그렇듯이 행복 역시 난청이다. 세계의 모든 구석에서 울려 나오는 행복에의 간절한 요청이 묵살되는 걸 보면 그것은 사실일 테다.

돈도 집도 가정도 없이 떠돌던 시인, 불행의 조건을 두루 갖춘 시인이다. 그는 불행의 양상은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행복은 단순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나는 그를 가리켜 천진무구함과 무욕으로 무장한 채 자본주의 관행과 생리에 무차별적인 테러를 감행한다고 썼다. 제 직업이 가난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처참함에 빠졌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에 일가견이 있었다. 아주 작은 행복에도 반응하며 커커커커… 하는 특유의 웃음소리로 웬만한 불행쯤은 단박에 무색하게 만든 사람, 그의 이름은 천상병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불행에 과민하다. 불행에 방어기제가 없는 사람은 아주 작은 불행에도 쉽게 무너진다. 그런 이들에게 행복을 향한 자긍심과 호연지기가 하늘을 찌를 지경인 천상병 시를 권한다. 가난의 극단에서 행복을 외치는 이런 시는 어떤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천상병, ‘나의 가난은’)이란 시구로 그의 행복은 찬란하게 과시된다. 커피 한 잔, 담배 한 갑, 집으로 돌아갈 버스비만으로도 행복의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선언은 물욕으로 가득 찬 이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다./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천상병, ‘행복’)

쓰디쓴 것 앞에서도 충만하니

이런 행복론은 너무나 순진하고 솔직해서 믿기지 않는다. 시인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모든 걸 가졌다고 선언한다. 누가 이 소박한 행복론에 반론을 펼 수 있을까? 가진 게 많다고 반드시 행복해지거나 가진 게 적다고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커피 한 잔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다. 그 쓰디쓴 것을 앞에 놓고 우리는 충만하다. 커피 한 잔은 생의 곤란에 직면해서 요동치는 감정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커피 한 모금을 넘기는 짧은 순간 우리는 복잡계에 놓인 인생의 불확실성과 실패를 체념 속에서 가만히 용납한다. 스무 살 때 사랑이 깨질 수 있다는 걸 깨우쳤다면 알 테다. 사랑이 항상 행복이 아니라 차라리 인생의 쓰디쓴 실패와 방황을 가져온다는 것을!

커피 한 잔은 코르티솔 호르몬의 과다 분비 속에서 허우적이는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저 밤하늘에 뜨는 수천억 개의 별은 제 궤도를 돌고, 텃밭에서는 토마토들이 붉고 둥글게 익어간다. 라디오에서 일기예보를 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계절은 탈 없이 순환한다. 남쪽 바다에는 살찐 민어들이 돌아오고 자두나무에 가득 열린 자두에는 단맛이 들 테다. 여름 성경학교가 열리고, 하얀 팔을 가진 애인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빌리 조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행복의 조건은 거창한 게 아니다

어느 날 내 행복을 결정하는 것들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이를테면 감옥에 갇힌 흉악한 강도 살인마가 탈옥하지 않고, 슈퍼마켓은 문을 열어 고객을 받는다. 국제공항에서 여객기들이 제 시각에 이륙하고, 기차역에서 기차들은 제 시각에 목적지로 출발한다. 딸아이는 어느덧 스무 살을 맞고, 어머니는 다리 골절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선다. 구름이 하얀 궁전처럼 떠 있고 산기슭에는 소박한 산수국 꽃이 피던 날이다. 그것만으로 내 인생의 하루가 순조로울 것이란 기대로 가슴이 설렐 테다.

내 행복은 책 집필을 막 끝내고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는 느긋함 덕분이다. 원고를 탈고한 순간 나는 집필 감옥에서 풀려난 해방감으로 뿌듯해할 테다. 커피 한 잔은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인생의 감미로운 한순간을 선물한다. 간밤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쓴 원고를 실수로 다 날리고 망연자실한 채 새벽의 커피를 마실 때조차 나는 행복할 수 있다. 오후의 커피를 마시는 동안 친구의 동화 같은 첫사랑 얘기를 들을 때 나는 행복하다. 실수로 사라진 원고는 결국 다시 쓰게 될 거고, 동화 같은 첫사랑 얘기를 들려주던 친구는 이듬해 봄에 거짓말같이 죽는다. 누군가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게 인생이라고 말해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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