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익만 좇는 사람들…‘어른’이란 무엇인가[신문과 놀자!/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4 hours ago 2

확고한 신념 없이 이해관계로 행동
정치적 관점에선 국익에 도움되기도
1000명에 장학금 내준 김장하 선생
이익 나눠주고도 앞에 나서지 않아
기회주의자와 대비되는 모습 보여

권력을 얻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정치’는 상호 이해를 조정하는 활동이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정치인은 국가 이익을 위해 외교활동을 벌인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권력을 얻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정치’는 상호 이해를 조정하는 활동이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정치인은 국가 이익을 위해 외교활동을 벌인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라디오에서 우연히 ‘난가병’(나인가 병)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난가병’은 충분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직책이나 역할을 두고 “내가 맡아야 하나?” “내가 적임자인가?”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일컫는 신조어라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실제 자신의 능력보다 자신이 더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 과대 망상증과 결이 비슷하다는 분석도 내놓습니다.

●정치는 상호 이해 조정하는 활동

‘난가병’은 주로 기회주의자에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나인가?’라는 말은 ‘그 직책을 차지할 기회가 나에게 왔나?’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직책을 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는 단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기회주의는 확고한 자기 원칙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치는 권력을 얻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이고, 상호 이해를 조정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또 정치인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국가 이익을 챙겨야 하는 외교 활동도 해야 합니다. 이에 정치인은 이해관계에 민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가령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기에 조선 조정이 국익을 기준으로 민첩하게 움직였다면, 병자호란이라는 전란은 피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기회주의자가 비판받는 이유

기회주의자들은 줄곧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작가 전광용이 1962년에 발표한 소설 ‘꺼삐딴 리’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 소설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데, 작품에서 기회주의자인 이인국 박사는 풍자의 대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의사인 이인국 박사는 이익에 따라 일제강점기에는 황국신민으로 살았고 광복 후에는 소련파로, 때로는 미국파로 살았습니다. 이인국 박사와 같은 기회주의자가 풍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시류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만을 노렸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선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해 공적 지위를 노리는 기회주의자도 있습니다. 공적 지위를 노리는 기회주의자는 자기 능력을 포장하고 이를 토대로 고난을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뛰어난 능력을 토대로 고난을 극복했다는 이야기는 영웅 이야기 구조의 기본 공식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은 영웅이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기회주의자들은 자신이 권력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명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을 영웅 이야기로 포장하려 노력합니다.

우리는 기회주의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개인의 이익과 출세를 위해 노력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회주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에 주려고 한 사람

기회주의자가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시류에 영합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여러모로 2023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김장하 선생과 대비됩니다.

김장하 선생을 다룬 책 제목은 ‘줬으면 그만이지’입니다. 제목처럼 세상에 이익을 내어준 사람이 바로 김장하 선생입니다. 그는 60여 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며 주변 학생 1000명 이상에게 장학금과 생활비를 나눠줬고, 1984년에는 사재 110억 원을 들여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한 후 조건을 달지 않고 나라에 헌납했습니다. 세상에 내어주었다고 생색내지 않고자 한 어른의 삶은 자신의 이익을 얻고자 애쓰는 기회주의자들의 삶과 여러모로 비교됩니다.

기회주의자들은 억지로 주목이라도 끌고자 노력합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이름이 회자되면 이익이 되는 기회가 왔을 때 나서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장하 선생은 자신을 앞에 내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책의 저자조차 김장하 선생을 취재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김장하 선생처럼 살 수는 없다고 해도, 세상에서 얻기만 하려는 사람은 아닌지 요즘 다시 되돌아보게 됩니다.

박권주 진주 대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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