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한국 떠났다…수술 줄줄이 중단될 판 '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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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필수 소모성 의료기기(치료재료)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치료재료를 생산·판매하는 국내외 업체가 정부의 가격 통제에 지쳐 공급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4월 말까지 생산 및 수입이 중단된 치료재료는 총 44개였다. 전년 동기(7개) 대비 6배, 지난해 전체(16개) 대비 2.75배에 달하는 규모다.

일찌감치 한국 시장 떠났다…수술 줄줄이 중단될 판 '초비상'

미국 외과수술장비 업체인 드퓨신테스는 한국에서 지난달까지 전 품목의 공급을 중단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 회사가 독점 공급하던 ‘인공확장형 금속 늑골’을 구할 수 없자 선천성 소아 척추측만증 수술이 중단됐다. 드퓨신테스는 한국의 금속 늑골 건강보험 수가가 미국의 20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김영민 의료기기산업협회장은 “2000년 가격 상한제가 도입된 이후 치료재료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아 관련 기업의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가 수준으로 의료기기 공급 못해"…척추측만증 수술 멈췄다
한국시장 떠나는 기업들…수술 중단 사태 줄잇나

병원에서 수술에 사용하는 필수 소모성 의료기기(치료재료)가 공급 위기를 겪고 있다. 건강보험 저수가를 견디지 못해 외국계 업체는 한국 시장을 떠나고 국내 업체도 제조·공급을 포기하고 있다. 일부 의료기기 공급이 끊기면서 관련 수술이 중단되는 등 의료 현장엔 비상이 걸렸다.

◇심장·수두증 수술 중단 위기

1일 업계에 따르면 의료 현장에서는 심장 수술이 중단 위기를 맞았다. 인공심폐기와 혈관을 연결하는 혈관 튜브(캐뉼러)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다. 정재승 고려대 안암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최근 캐뉼러 공급 수량이 예전의 100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심장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심장을 잠시 멈춘다. 이때 심장 역할을 대신하는 인공심폐기를 캐뉼러로 혈관에 연결한다. 국내에 인공심폐기용 캐뉼러를 공급하는 곳은 오직 한 곳, 세계 1위 의료기기업체인 미국 메드트로닉이다. 과거 세 업체가 인공심폐기용 캐뉼러를 공급했으나 모두 ‘단가가 맞지 않는다’며 일찌감치 한국 시장을 떠났다. 국내 공급 가격은 유럽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상수 메드트로닉코리아 부사장은 “원가 수준의 가격만 인정하는 한국은 본사 공급 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수두증 수술에 쓰이는 뇌척수액용 밸브 역시 언제 공급이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수두증은 뇌에 뇌척수액이 과도하게 축적되는 질환이다. 제때 수술하지 않으면 뇌 발달장애가 생기거나 뇌압이 상승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수술로 뇌실에 관을 심어 뇌척수액을 복막으로 흘려보내 줘야 한다. 관에는 밸브를 설치해 뇌압에 따라 흐르는 뇌척수액을 조절해야 한다. 뇌척수액 밸브는 수두증 수술을 위한 필수 치료 재료지만 저수가로 인해 공급 위기를 맞고 있다. 국내에 뇌척수액 밸브를 공급하는 비브라운코리아 관계자는 “국내에 뇌척수액용 밸브를 공급하는 업체는 세 곳”이라며 “각자 수입하는 물량이 워낙 적어 한 업체만 공급을 중단해도 의료 현장에 영향이 클 것”이라고 했다.

◇가정용 공급도 불안

가정에서 쓰이는 치료재료 공급도 불안하다. 영국 스미스앤드네퓨는 올초부터 가격 문제로 국내에서 휴대용 진공음압창상 처치용 드레싱 공급을 중단했다. 휴대용 진공음압창상 처치용 드레싱은 교통사고, 절단 사고 등으로 피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근육이나 뼈가 노출되는 중증 상처를 병원 치료 후 가정에서 관리하기 위해 쓰인다. 스미스앤드네퓨가 국내에 전량 공급해 왔다. 약국에 재고 물량이 남아 있지만 이마저도 오는 9월 바닥날 것으로 예상된다. 스미스앤드네퓨의 국내 공급 가격은 다른 국가 대비 10분의 1에서 40분의 1 수준으로 알려졌다.

◇제2의 인공혈관 사태 우려

의료계에서는 ‘제2의 인공혈관 공급 중단 사태’가 줄을 잇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019년 국내 유일한 인공혈관 공급업체인 미국 고어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당시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환아들의 수술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가 고어에 기존 수가의 두 배를 보장하며 가까스로 공급이 재개됐다. 선천성 소아 척추측만증 수술은 치료 재료 공급난에 지난달부터 중단됐다. 황창주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척추기형 소아환자에게 꼭 필요한 의료기기인 ‘인공확장형 금속 늑골’ 공급이 중단되면서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의료기기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와 한국의료기기협동조합이 지난해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급 중단이 예상되는 품목은 100여 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오현아/안대규 기자 5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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