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휴전협상 따로, 전투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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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2011년 개봉한 영화 <고지전>은 6·25전쟁 당시 가상의 에록고지 전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에록고지는 KOREA를 거꾸로 읽은 것이다. 이 영화는 1953년 7월 판문점에서 휴전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에록고지에 남겨진 병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휴전협정이 발효되기까지 12시간 남은 상황에서 에록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처절한 전투를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이미지 확대 우크라이나전 주요 전선

우크라이나전 주요 전선

[전쟁연구소 보고서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 <고지전>은 정전협정을 1주일여 앞두고 치러진 화천 425고지 전투 등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425고지는 강원도 화천군 북방 철책선 1.2㎞ 앞 비무장지대(DMZ)에 있다. 이 고지는 당시 국내 주요 전력 공급원인 화천댐에 이르는 요충지여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국군 7사단 8연대 1대대는 인해전술로 맹공을 펼친 중공군 135사단을 상대로 결사 항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정전협정 결과에 따라 군사분계선이 425고지의 중앙을 지나면서 남북으로 갈렸다. 국군 병사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고지에서 내려왔다고 전해진다.

전쟁은 국가 지도자들의 협상으로 종지부를 찍지만, 애꿎은 병사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경우 19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 휴전이 발효됐지만, 그 직전까지 수많은 군인들이 전투에 동원됐다가 희생됐다. 베트남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군 철수가 결정되고 협상이 진행될 때도 전장(戰場)은 참혹했다. 남베트남과 베트콩 사이의 전투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고, 종전 선언이 나온 후에도 전사들의 희생은 기록되지 않은 채 묻혔다. 이 같은 참상은 협상 테이블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셈법의 산물이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 중재 아래 휴전으로 수렴하는 형국이다. 앞서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30일간 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전쟁 유발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점령 중인 자국 본토 쿠르스크주를 방문해 완전한 수복을 지시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종전 협상에서 '교환 카드'로 활용하려는 러시아 쿠르스크주의 점령지를 빠르게 탈환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협상 가능성이 언급될수록 전선에서는 양측 간 치열한 공방전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전쟁 관련국 간 협상이 끝난 뒤 남는 것은 협정문과 지도자들의 공허한 악수가 고작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역사에 숫자로만 남는다. 전쟁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이 같은 사실이 끝까지 싸우다 산화한 이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전쟁의 상흔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국민 개개인은 악몽의 시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전쟁은 언제나 파괴와 패배만 남길 뿐이다.

jongw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3월14일 07시29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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