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英 MI6 첫 여성국장

6 hours ago 1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영국 첩보소설의 아이콘은 '007' 제임스 본드다. 말쑥한 정장에 마티니를 즐겨 마시는 본드는 이언 플레밍이 창조한 MI6(해외정보국)의 전설적 요원이다. 본드는 냉전 시대 영국의 자존심이었다. 반면에 존 르 카레의 소설 세계는 냉소로 가득 차 있다. 그의 페르소나인 MI6 정보관 조지 스마일리는 첩보원 인상과는 거리가 먼 뚱뚱한 체형인 데다 피로에 찌든 중년이다. 그는 도덕과 신념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며, MI6 활동을 체제 모순과 인간적 회의가 얽힌 회색지대로 인식했다. 플레밍이 스파이를 신화로 만들었다면, 르 카레는 그 신화를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이미지 확대 영국 MI6 본부 건물

영국 MI6 본부 건물

플레밍과 르 카레는 상반된 방식으로 MI6를 묘사했다. 한 가지 공통점은 스파이 세계가 남성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1909년 창설된 MI6는 남성 중심 체제를 유지해왔다. MI6는 1·2차 세계대전, 냉전, 9·11 이후 테러 대응에 이르기까지 국제 정보전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냉전기엔 소련의 KGB(국가보안위원회)와 경쟁하며 스파이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조직 내 고위층이 KGB의 이중간첩으로 활동한 '케임브리지 5인조' 사건은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MI6는 이후 테러 대응, 사이버 안보, 대러·대중 정보 수집 등으로 기능을 재편했다. 이런 변화 속에 여성 요원의 수와 역할이 꾸준히 늘었지만, 고위직은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로 남아있었다.

지난 100여 년간 남성 중심 체제를 유지해온 MI6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상 첫 여성 국장이 임명될 예정이다. 올해 퇴임하는 리처드 무어(62) 국장의 후임자로 선정된 최종 후보 3명은 모두 여성이다. 이 중 2명은 내부 인사이며, 나머지 1명은 바버라 우드워드 주유엔 대사다. MI5(국내정보국)에선 여성 국장을 2명이나 배출했지만, MI6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 007시리즈에서 주디 덴치가 연기한 MI6 국장 'M'은 MI5의 첫 여성 국장 스텔라 리밍턴을 모델로 삼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정보기관의 수장은 비공식 외교, 정보의 해석과 판단, 국익 우선의 복잡한 셈법을 다뤄야 하는 힘든 자리다.

MI6를 비롯한 각국의 정보기관은 변화된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고 있다. 과거처럼 총과 독약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시대는 지났다. 정보의 가치는 신속한 수집과 정밀한 해석, 정치적 파급력에 있다. 예리한 감각과 유연한 사고, 민첩한 위기대응 능력은 현대 정보기관이 요구하는 핵심 역량이다. 맥킨지 보고서(2018년)에 따르면 성별 다양성이 높은 조직은 혁신성과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미국 CIA(중앙정보국), 이스라엘 모사드, 프랑스의 DGSE(대외안보총국) 등에서도 여성 고위 간부들이 늘고 있다. MI6의 첫 여성 국장 탄생은 조직 내부의 구조적 전환과 글로벌 정보환경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MI6의 첫 여성 국장 임명은 현대 정보전의 특성 변화와 정보기관의 역할 확대에 따른 진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정보기관도 점차 남성 중심적인 조직문화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전체 직원 중 여성 비율은 2006년 기준으로 약 10%에 불과했다. 2021년에는 국정원 신입 직원 중 여성 비율이 전체의 절반 수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당시 국정원 창설 6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비서실장이 임명됐고, 김선희 전 정보교육원장이 과학정보 및 사이버 보안 분야를 총괄하는 3차장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jongw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15일 06시30분 송고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