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정 교수 "aHUS 진단~투약에 한 달…규제로 인해 치료 골든타임 놓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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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 예외였다. 희소 신장 질환인 비정형 용혈요독증후군(aHUS) 환자에게 투여된 ‘에쿨리주맙’의 치료 결과는 세계 어디서나 긍정적이었지만, 국내에선 유독 예후가 좋지 않았다. 분석 결과는 명확했다. 진단부터 투약까지 한 달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미 신장은 망가진 뒤였다.

◇ ‘처방 지연’ 韓 제도 개선해야

“신장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국내에선 약이 효과를 내기엔 늦은 시점에서야 투약이 시작됩니다.”

유럽신장학회(ERA)가 열린 오스트리아 빈에서 지난 5일 만난 이하정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aHUS 치료제인 에쿨리주맙(상품명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 에피스클리)에 대해 “환자가 있어도 정작 처방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2023년까지 국내 환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진단부터 첫 투약까지 평균 30일이 소요됐다. 그는 “글로벌 기준은 진단 후 1주일 내 투약이 가장 좋다는 것인데, 한국 환자는 그 골든타임을 빈번히 놓쳤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신장학회(ERA) 현장에서 지난 5일 만난 이하정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비정형 용혈요독증후군(aHUS) 환자를 치료할 때 마주하는 제도적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제공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신장학회(ERA) 현장에서 지난 5일 만난 이하정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비정형 용혈요독증후군(aHUS) 환자를 치료할 때 마주하는 제도적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제공

aHUS 환자의 치료를 어렵게 하는 허들은 국내 제도와 절차다. 진단에 필요한 ADAMTS13 검사는 외부 위탁 시 1주일 이상 걸리고, 급여 신청 후 승인까지는 신속해도 5일~2주가 필요하다. 서울대병원은 자체 수행으로 검사 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다른 병원은 외부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교수는 “혈류 공급에 민감한 신장은 그렇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제도는 환자 상태보다 서류 기준을 더 본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진단은 지연되고, 환자 상태는 손쓸 틈도 없이 악화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환자 데이터를 보면 초기 진단부터 첫 투여까지 걸리는 기간이 짧을수록 예후가 뚜렷하게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가 처음 처방한 환자는 신장 이식 후 재발로 입원한 사례였다. 에쿨리주맙(솔리리스)을 투약했고, 급격히 떨어진 신장 기능을 회복했다. 하지만 유전적 변이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추가 투여가 허가되지 않았다. 환자보다 서류 기준을 더 본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과거에는 신장 이식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급여 대상에서 일괄 배제되기도 했다. 이식에 따른 감염과 거부 반응 등 ‘2차성 질환’이 원인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교수는 “현장에서는 오히려 이식이 ‘질환을 드러내는 자극’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필요한 치료임에도 기준에 막혀 쓰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신장 이식 환자에 한해 예외 조항이 생기면서 상황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사전 심사를 통한 제한적 접근만 가능하다.

◇ 가격 낮춘 에피스클리로 의료 현장 숨통

aHUS는 외부 감염에 대한 우리 몸의 1차 방어선(선천면역)인 보체 시스템의 조절 실패로 신장과 전신의 미세혈관이 손상되는 희소 질환이다. 혈소판 감소, 빈혈, 급성 신장 손상 등이 동시에 나타나며 치료가 늦어지면 투석이나 이식이 불가피하다. 원인 유전자가 불분명할 때가 많고, 다른 질환과의 감별도 어려워 ‘비정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진단 기준 역시 불분명하다 보니 국내 환자 수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질환의 주요 치료제는 보체 단백질 C5를 억제하는 약물이다. 에쿨리주맙이 대표적이며, 최근에는 장시간 지속형인 ‘울토미리스’(성분명 라불리주맙)도 도입됐다. 다만 울토미리스는 초기 투약비가 더 높고, 국내 임상 경험이 적어 아직은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이 교수는 “옵션이 늘어난 건 환자에게 좋은 일이지만, 현실적인 접근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에쿨리주맙 계열이 더 실용적”이라고 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에피스클리 덕에 의료 현장은 일부 숨통을 틔웠다. 약가는 기존 오리지널 대비 절반 수준이며,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제공하는 환자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에피스클리 출시 이후 국내 aHUS 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심사 기간 에피스클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 약은 무조건 평생 써야 하는 약이 아니다”며 “초기 1~2회만이라도 선처방 후심사로 허용된다면 구할 수 있는 신장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빈=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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