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버블 붕괴 전후의 일본은 장기간의 저성장·저물가를 낳은 부채·인구·기술 세 측면에서의 구조변화에 직면해있었다. 즉 자산시장발(發) 부채누증, 인구 고령화, 글로벌 수평 분업화라는 삼각 파고가 중첩된 상황이었다. 물론 일본 사회 내에서 이러한 구조변화가 가져올 위기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나, 이에 대응한 구조개혁은 과거의 성공 경험에 대한 기억, 이해당사자의 강한 정치적 반대 등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구조개혁만이 해결책인데, 보완 수단인 경기대응 정책에 상당 부분 의존한 결과 정부 재정여력은 소진됐으며 통화정책의 유효성도 오랜 기간 제약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행 BOK이슈노트 '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 202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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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이세원]
한국 경제가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으로 표현되는 일본의 장기 저성장·저물가 시대를 닮아가고 있다는 경고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후 한국 고속성장의 주축인 수출을 뒷받침해줬던 글로벌 통상질서가 최근엔 첨단기술 패권경쟁과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오히려 성장의 걸림돌이 됐다.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돼 인구의 잠재성장률 기여도는 2000년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부동산 부문에 거대하게 쌓인 가계 빚 때문에 민간 부문의 레버리지 비율은 일본에서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거품붕괴 전후의 일본과 최근 우리가 처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부동산 부채와 저출산 고령화, 제조업 중심의 수출 성장모델에 대한 구조개혁을 주문했다.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아예 각국의 물가, 부채, 생산연령인구 등 10개 항목을 평가해 1990년대 일본 경제상황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알기 쉽게 지수로 만들어 발표했다. 주요국의 장기 저성장 위험 정도로 해석되는 이 '일본화 지수'(Japanification Score. 작년 기준)는 한국이 6점이었다. 전세계 30개국 중 태국과 중국이 각 7점으로 가장 높았고 홍콩과 한국이 각 6점으로 공동 3위다. 10점(만점)에 가까울수록 일본과 비슷하다는 뜻이니 6점이면 위험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한국의 5년 평균 생산연령인구 증가율은 -0.9%로 주요국 중 가장 낮았고 민간부채 비율도 평가대상 국가 중 2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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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 일본 경제 성장률이 4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일본 내각부가 16일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속보치)은 전 분기 대비 0.2% 줄었다. 일본 경제의 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작년 1분기 -0.4% 이후 4분기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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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성장률 하락과 장기 저성장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항상 구조 개혁과 성장잠재력 확충이 해법으로 제시되고 이를 위한 정책적 노력도 진행돼 왔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단기에 해결할 수도 없고 곧바로 성과가 나타나지도 않는 과제이므로 예산책정이나 정책대응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경기가 급강하해 단기 부양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경기대책이 현금 살포와 부채 탕감 등 단순 지원에만 그친다면 구조개혁은 또다시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글로벌 교역질서 재편에 대응할 산업구조 개편, 인구절벽과 연계한 노동시장 문제, 생산성 향상과 기술 개발 등의 과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저성장 탈출은 공염불에 그치고 한국 경제는 일본의 전철을 뒤따라 가게 될 것이다.
이미 한국이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개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은은 과거 일본이 인구문제에 제때 대응했다면 2010∼2024년 성장률이 평균 0.6%포인트 상승했을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구조개혁에 성공하면 2040년대 후반 0.6%까지 추락할 것으로 보이는 잠재성장률을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적 시장주의'엔 단기 경기대응 정책뿐 아니라 향후 대한민국 경제의 중장기 비전과 전략, 그리고 그를 뒷받침할 경제개혁의 로드맵도 포함돼야 한다. 그것만이 가라앉는 한국 경제를 다시 성장의 궤도에 올려놓는 길이다.
hoonkim@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09일 10시06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