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신중한 매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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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통화정책은 때때로 흐린 앞 유리창에 속도계는 고장 나고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에 비유되는데, 실제로 그렇게 느껴진다. 향후 경제 여건이 어떻게 펼쳐질지 불확실하다는 점, 그리고 정책 효과도 매번 같지 않으며 시차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이 내리는 결정은 어렵다. 1980년대 후반 일본 버블경제의 경우처럼 정책 효과가 상당 기간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며, 그 결과를 온전히 파악하는데 5년에서 10년 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미지 확대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에서 5년간의 총재직을 포함해 39년간 근무하며 글로벌 금융위기와 '잃어버린 30년' 등 격동의 시기를 현장에서 체험한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는 회고록에서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통화정책의 어려움을 위와 같은 비유로 설명했다. 그는 또 "중앙은행이 결정한 정책은 모든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으며 그렇게 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면서도 "그러나 중앙은행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신뢰와 지지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고도 했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1990년대 초 일본 경제의 버블이 붕괴했을 때 일본은행이 적극적인 완화 정책을 쓰지 않아 침체가 장기화됐다는 비판에 대해 항변하면서도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이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어떻게 영향받았는지를 설명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어렵고도 힘든 작업이다.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정부 재정정책과 달리 경제 전반에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효과와 역효과를 고루 고려해서 치밀하고 정교하게 구사해야 하는 정책이다. 생산과 수출, 소비, 고용뿐 아니라 주가와 환율 등 국내 경제 전반의 거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고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요구, 금융시장의 기대를 무시하거나 저항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기대를 무턱대고 따라가기만 해서도 안된다. 대개 결정에 대한 지지보다 비판과 비난이 많다. 통화정책의 보안은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지만 시장이 그 흐름을 예측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이른바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예고)'를 제공한다. 핵심은 시장과의 교감이다.

이미지 확대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나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금리 인하기'에 들어섰지만 몇 차례의 간헐적 금리인하 후 동결을 거듭하며 '신중한 매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부진한 경기를 활성화하려면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불안한 관세정책이, 한국은 부동산 불안과 가계부채, 미국과의 금리 격차 확대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해고 협박과 굴욕을 견디며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중앙은행의 권위를 지켜내고 있다. 부적절한 금리인하가 초래할지 모를 인플레를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통화정책이 정치권의 요구와 압력에 굴복해 좌지우지됐을 때 초래되는 경제 부작용의 사례는 세계 역사 속에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지 확대 이창용 한은 총재, 금융통화위원회 주재

이창용 한은 총재, 금융통화위원회 주재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5.5.29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영혼까지 끌어모아 내 집을 마련한 차주(借主)들부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어렵게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 '코스피 5,000' 시대를 향해 부푼 꿈을 꾸고 있는 1천400만 주식투자자,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으로 매출에 타격을 받은 기업들 모두 간절하게 금리 인하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추가 금리 인하는 불붙은 서울 아파트 가격에 기름을 부을 가능성이 크고 물가와 환율의 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오는 10일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하든, 아니면 또 한 차례 인하하든 그 결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것 또한 한은의 몫이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대중으로부터 '중앙은행은 고집스러워 보일지라도 장기적인 경제 안정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 다소 과감해 보이는 조치를 하더라도 분명 이에 수반되는 위험을 신중하게 검토하면서 정책을 집행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신뢰와 공감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hoonkim@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7월08일 06시4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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