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칼럼]동맹은 ‘외계인 침공’ 때까지 안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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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전쟁’ 워게임이 드러낸 동상이몽
美는 核반격 ‘주저’… 韓은 주한미군 ‘발목’
日은 ‘원 시어터’ 구상 펴며 주도권 ‘야심’
6달치 이자 붙은 안보청구서 쏟아질 텐데…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이 지난달 공개한 ‘가디언타이거 도상연습(TTX)’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미 국방부와 군 관계자 등 전문가 60여 명이 참여한 두 차례의 TTX는 각각 북한의 서해 도발(가디언타이거Ⅰ)과 중국의 대만 침공(가디언타이거Ⅱ) 시나리오로 시작되는데, 종국엔 북한의 전술핵 사용이란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두 워게임은 모두 미국이 끝내 핵 반격을 주저하고 북 정권 종말 작전도 성공을 낙관하지 못한 상태로 종결된다.

가디언타이거Ⅰ에서 북한은 화학무기 공격에 이어 동해에서 저위력 전술핵 시위를 벌이는데, 그 대응을 놓고 미국 내 의견이 크게 갈린다. 국가안보회의(NSC)는 핵과 비핵 두 가지 옵션 가운데 비핵 쪽에 무게를 둔 권고안을 내놓는다. 군 수뇌부는 핵 반격이 아닌 최신 정밀타격 작전을, 주한미군은 핵·재래식 복합 총공세 또는 평양 인근 핵 공격을 각각 주장한다. 결국 이 워게임은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끝난다.

가디언타이거Ⅱ에서도 북한은 중국의 대만 침공에 맞춰 도발 수위를 높여가다 한국 공군기지에 전술핵 공격을 감행하고 괌 주변에 중거리미사일(IRBM) 4발을 발사하는 무력시위를 벌인다. 한미는 북 정권 종말 작전 개시에 합의하고 개성 인근에 대한 저위력 핵 공격도 고려한다. 그러나 이 역시 비관적 전망과 숱한 의문점만 남긴 채 끝난다. 한미가 대규모 지상·공중 반격 작전을 벌여 평양 근처에 접근하지만 북한의 추가 핵 공격 가능성에 주춤하고, 그러는 사이 중국이 대만 공세를 강화할 기회를 잡으면서 대만 함락 우려는 커진다.

이 워게임에서 확인된 것은 동맹의 동상이몽이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에 미국은 북 정권 종말을 경고하지만 북한은 한낱 엄포로 여기고 미국도 갈팡질팡한다. 한국 역시 중국의 위협에 굴복해 주한미군의 대만 투입은 물론 탄약 반출마저 반대한다. 원치 않는 분쟁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동맹 간 ‘연루의 위험’ 회피 경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워게임 보고서는 공교롭게도 미 국방부가 여름에 내놓을 새 국가방위전략(NDS) 작성이 한창인 가운데 공개됐다. 새로운 NDS는 중국의 지역 패권 저지를 최우선에 두고 동맹·우방의 ‘반(反)패권연합’ 구축부터 전 세계 미군의 재배치와 지휘체계 개편까지 포괄하는데, 두 개의 전쟁 시나리오는 그 ‘선택과 집중’을 위한 중요한 검증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NDS 작성을 책임진 엘브리지 콜비 국방차관은 최근 영국 등 유럽 국가가 대만해협에 전함을 보내는 데 대해 힐난조의 우려를 표시하며 유럽 안보에나 집중하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괜히 오지랖 부리지 말고 미국의 발목이나 잡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같은 논리로 미국은 한국이 북한 방어를 책임지고 주한미군은 중국 억제로 돌리겠다고 할 게 분명하다.

워게임 보고서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통합 등 지휘체계의 업데이트를 권고한 대목도 눈에 띈다. 가디언타이거Ⅰ에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전제로 한국군이 지휘하는 연합사령부(CFC)와 별도로 주한·주일 미군을 통합한 4성 장군급 동북아사령부(NEACOM)를 창설하는 옵션을 가동해 보기도 했다. NEACOM이 생기면 본부를 어디에 두는지, 주한미군사령관은 대장에서 중장으로 격하되는 게 아닌지 등 민감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선지 일본의 최근 움직임도 심상찮다. 일본 정부는 최근 한반도와 대만해협, 남중국해를 하나의 전역(전시작전구역)으로 묶는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을 미국에 제시한 뒤 ‘오션(OCEAN)’이란 용어로 대체해 전파하고 있다.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체제의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야심인 것이다.

6개월의 리더십 공백 끝에 출범한 한국의 이재명 정부 앞엔 주한미군의 규모 감축이나 역할 조정 같은 워싱턴발(發) 청구서가 여섯 달 치 이자까지 붙어 줄줄이 날아들 기세다.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삼되 중국에도 척지지 않겠다는 새 정부의 실용외교가 곧장 시험대에 선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대만을 돕겠느냐’는 질문에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려 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질문에 “내 카드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며 답을 피하는데, 이 대통령만 답을 강요당할 이유는 없다. 다만 주한미군을 한국에 묶어두지 않겠다는 미국에 맞서 북핵 도발을 막을 억제력을 약속받으려면 동맹의 마음을 잡아둘 우리의 가치를 보여야 한다. 적어도 미국 NDS가 나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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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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