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도 ‘치료 가능한 암’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정기 검진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고, ‘핑크리본’ 캠페인 덕분에 질환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높기 때문이다. 조기 발견율이 높아졌고, 혁신 신약이 도입되면서 조기 유방암 5년 생존율은 90%를 넘어섰다.
그러나 높은 생존율 이면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60, 70대 유방암 환자들이 많은 서구권과는 달리 국내 유방암은 비교적 젊은 연령대인 40, 50대 여성에게 주로 발병한다. 40, 50대는 경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자녀 양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때다. 유방암이 환자 개인의 삶과 가정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심각한 경제·사회적 부담을 초래하는 이유다.
서강대 헬스커뮤니케이션센터는 최근 병기 1∼3기 조기 유방암 환자의 경제적 손실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의료비와 근로 중단으로 인한 소득 손실, 가사노동 손실, 자녀 보육비, 교통비, 간병비 등 유방암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비용을 측정했다. 그 결과 조기 유방암 환자의 평균 경제적 손실 비용은 최소 3897만 원에서 최대 7507만 원으로, 한국 근로자 연간 평균 임금(4940만 원)에 근접하거나 상회했다.특히 조기 유방암 환자가 재발했을 때 경제적 손실 비용이 전반적으로 높았다. 재발이 있었던 조기 유방암 환자는 재발이 없었던 환자보다 총 경제적 손실 비용이 평균 2900만 원 정도 더 높게 발생했다. 이번 연구는 1∼3기 조기 유방암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전이성 유방암을 포함한 4기 유방암까지 고려하면 유방암 재발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 비용은 더 클 것으로 유추된다.
잠재적인 재발 위험은 유방암의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증폭시키는 요인인 한편으로 환자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호르몬 양성 조기 유방암을 기준으로 볼 때 첫 진단 후 5∼20년이 지나서도 재발할 수 있으며, 3기인 경우 2명 중 1명이 재발한다. 재발 중에서도 원격으로 전이가 일어난 4기 환자는 생존율이 34%로 크게 낮아진다.
이는 비단 유방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른 암에서도 재발은 환자의 삶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령 폐암은 재발과 전이의 위험이 높고 완치율이 낮아 치료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수다. 특히 비소세포폐암 환자 절반 이상은 진단 당시 이미 병이 진행된 상태이며 수술 후에도 20∼50%는 재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복되는 치료는 유방암 환자와 마찬가지로 의료비 부담, 직업 상실, 신체 기능 저하로 이어진다. 뇌, 뼈, 간 등 주요 장기로 전이될 위험도 높아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간암의 경우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수술이나, 간 내 재발률(최소 70% 이상)이 높아 장기 예후는 여전히 불량하다.이 같은 배경에서 ‘완치 이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가 보건 의료 정책의 새로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보건 의료 정책 방향이 ‘치료 중심’에서 ‘예방과 건강 투자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 조기 검진 확대와 치료 기술 발전은 생존율 향상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 냈지만, 이제는 그 생존이 지속 가능한 삶으로 이어지도록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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